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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수집가 Jul 04. 2024

마녀배달부 키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소녀의 성장

영화 <마녀배달부 키키> 속 빈티지 공간

나는 <바다가 들린다>, <귀를 기울이면> 같은 일상적인 지브리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에서도 <마녀배달부 키키>를 유달리 좋아한다. 이 영화는 볼 때마다 그 시기에 맞춰서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는 성장영화다. 그러니까 청소년기에 봤을 때의 감정과 청년기에 봤을 때의 감정이 또 다른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같은 점은 이 미숙한 마녀의 앞길을 응원하게 된다는 것.



영화 <마녀배달부 키키> 속 빈티지 공간

1. 유럽의 해안도시
2. 독립을 시작한 나만의 공간
3. 청어파이와 지브리메시


1. 유럽의 해안도시


작은 시골마을에 살던 키키는 바다 마을을 꿈꾸며 빗자루를 타고 집을 나선다.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폭풍우가 쳐서 기차에 몸을 숨기고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멋진 해안 도시에 도착! 유럽의 고풍스러운 바다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이 배경은 우리에게 따뜻한 향수와 신비로운 매력을 동시에 선사한다.


붉은 오렌지빛 지붕과 해안가 마을 전체를 보고 포르투갈 포르투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브리 공식 입장에서 배경이 된 장소를 공개했다. 바로 스웨덴의 스톡홀름 구시가지 감라스탄, 코리코마을과 발트해에 있는 스웨덴 최대의 섬인 고틀란드섬 비스뷔 마을을 참고했다고.


출처: https://www.ghibli.jp/works
출처 : 고틀랜드섬 비스뷔마을 구글맵 스트리트뷰

바다가 보이는 신이나 좁은 골목 등 작은 동네는 구글맵을 켜고 고틀란드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비슷한 곳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https://www.ghibli.jp/works
출처 : 스톡홀름 감라스탄 구글맵 스트리트뷰

트램 같은 도시의 교통수단이라던지 수많은 자동차와 인파가 나오는 도심부 장면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구시가지 감라스탄을 보면 역시 비슷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디테일의 장인 지브리이기에 외벽 가로등이나 벽걸이 오브제까지 하나하나 숨겨놓아서 더욱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 <마녀배달부 키키> 팬이라면 스웨덴을 꼭 찾아가 보길! (단, 영화 속에서는 내내 날씨가 좋았지만, 여긴 북유럽이기에 5월부터 8월까지 가는 걸 추천한다.)



2. 독립을 시작한 나만의 공간


13살이 되면 새로운 도시로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마녀의 전통을 따라 키키는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고향을 떠난다. <마녀배달부 키키>는 196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하지만, 1989년 일본이 한창 거품 경제인 시대에 개봉되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시골 소녀들이 도쿄로 상경하는 것을 은유하기도 했던 것이다.


 출처 : https://www.ghibli.jp/works

키키가 독립하기 전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은 녹지 가득하고 생활감이 있는 시골의 공간이다.


https://www.ghibli.jp/works

2층에 있는 그녀의 작은 방 역시 아늑한 소녀의 공간이다. 꽃무늬 벽지, 핑크색 커튼, 곳곳에 작은 빛을 비추는 조명,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까지 놓아두어 너무나 지브리스러운 공간처럼 연출되었다.  


https://www.ghibli.jp/works

도시로 나온 키키는 이제 혼자만의 공간을 꾸려나가야 한다. 본격적으로 독립을 시작한 그녀는 장을 보며 프라이팬을 고르는데, 이 장면에서 수많은 상경 소녀들이 어른으로 성장해 나갔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https://www.ghibli.jp/works

빵집에 있는 작은 다락방에 터를 꾸리게 된 키키는 이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아빠로부터 받은 라디오를 켜고, 먼지 가득했던 방을 쓸고 닦으며.


https://www.ghibli.jp/works

혼자 사는  독립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사를 하고 정리를 한 뒤, 자장면을 시켜 먹든 라면을 끓여 먹든 일단 식사를 하고 나면, 그 공간은 나만의 공간으로 익숙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키키 역시 팬케이크를 만들고, 그녀의 친구인 검은 고양이 지지를 닮은 머그컵을 두며 서서히 키키만의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작은 창문을 열면 따뜻한 햇빛이 들어온다. 키키의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에는 꽃 한 송이가 유리병에 꽂혀있다. 풍요롭지 않아도 소박하고 아늑한 그녀만의 공간이 완성되었다.



3. 청어호박파이와 지브리메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브런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메이와 사츠키의 도시락,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오니기리까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는 함께 나오는 음식 장면이 인상적이다. 너무나 먹음직스러워서 누구나 따라 해보고 싶게 만드는데, 그래서 일본에서는 지브리메시(ジブリ飯, 메시는 일본어로 식사, 밥이라는 뜻) 레시피 책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https://www.ghibli.jp/works

<마녀배달부 키키>에는 노부인이 손녀를 위해 만든 청어호박파이(ニシンとカボチャのパイ)와 키키를 위해 만든 초콜릿 케이크가 나온다. 앞서 말했듯 청어는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의 명물이기도 하기에 지역의 해산물을 살린 요리일 것이다.


영화에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데, 빵집 주인 오소노 상이나 숲에 사는 우르슬라 상, 그리고 요리를 해주는 노부인까지 모두 좋은 어른들이다. 나 역시 저런 어른이 되어 키키처럼 성장하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고작 13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키키는 마녀 수련을 위해 독립을 했다. 동세대의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위축되는 경험, 또래 남자아이와의 설레는 경험, 슬럼프에 빠지지만 이를 극복한 경험까지 이 영화는 키키가 마녀로서 성장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춘기 소녀의 인생 전체의 성장을 보여준다. 키키의 여정을 이미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영화이기에 , 모두가 공감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키키는 부모님께 이렇게 편지를 쓴다.

落ち込んだりもしたけれど私はげんきです
가끔 침울해지기도 하지만, 저는 잘 지내요



혼자 상경해 독립한 수많은 일본의 여성들은 <마녀배달부 키키>를 떠올리며 자기를 지켰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뿐만이 아닌 범세계적인 여성들의 지지를 얻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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