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습관들이 만들어낸 나만의 일상력
아침 일곱 시. 아침에 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을 만들고 싶어, 매일 아침 따뜻한 차(대부분 호지차나 녹차)를 끓여마시며 아침 기록을 해나갔다. 원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메일함을 열어 뉴스레터를 확인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처럼 뉴스레터를 읽는 것 또한 좋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루틴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작정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풋을 하기보다, 뭐가 되었든 나 자신을 아웃풋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절주절 내 이야기를 써가 보는 것으로 모닝 루틴을 수정하기로 한다. 따뜻한 호지차를 책상 위에 두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처음 호지차를 마시게 된 건 일본에서의 일상 속 작은 우연이었다. 도쿄에 막 정착했을 때, 낯선 환경 속에서 매일 바삐 움직이던 어느 날이었다. 갓포요리집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내게 함께 일하던 점장 할머님께서 권해줬던 게 호지차였다. 처음 맛본 호지차는 예상외로 깊고 고소한 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겨울날, 따뜻한 호지차 한 잔이 내 몸을 감싸는 순간, 그 향과 맛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그날 이후, 호지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바쁜 일상 속 나를 위로해 주는 작은 여유로 자리 잡았다. 이젠 아침에 호지차를 끓이며, 그때처럼 차분히 하루를 시작한다.
오후 한 시. 점심을 먹고 졸음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그리고 커피를 찾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스탠리 보틀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캡슐 커피로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커피 향이 주변을 감싸면, 차가운 물을 채워 넣는다. 동네 단골 디저트 가게에서 사 온 페이스트리나 도넛, 선물 받은 캐러멜과 초콜릿까지. 단 걸 너무 좋아하는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옆에 달콤한 디저트도 늘 곁들인다. 맛도 초코바나나와 누텔라같이 혈당 높은 것들만 고르고 나면, 이 조합으로 하루 내내 버티는 힘이 생긴다.
커피와의 첫 인연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카페인에 약한 나는 커피만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학교를 다니고부터는 과제 제출을 위해 날밤을 새워야 했을 때,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일에 지쳐 남은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해 에너지 드링크 개념으로 마신 게 전부였다. 치열하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다 카페를 운영하는 대기업으로 옮기고부터 커피와의 진지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당시 내가 다닌 회사는 엄청난 수의 카페를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커피는 당연히 공짜, 주위엔 온통 커피전문가들뿐이었고, 새로운 커피 브랜드 프로젝트에 덜컥 참여하게 되기까지 하면서 본격적인 커피 공부까지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하루 한 잔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계속 생각나고, 카페인 섭취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디카페인이라도 꼭 마실 정도로 커피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나와 커피는 오랜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오후 세시. 집안에 볕이 가장 잘 들어올 시간이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티타임을 가질 시간이기도 하다. 낮 시간의 행복 중 하나는 식사를 끝내고 별다른 죄책감 없이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대단한 애프터눈티 같은 건 너무 사치스럽다. 때때로 남편과 둘이서 크림티타임을 가져보기로 한다. 얼그레이 티백으로 우려낸다. 티백은 원하는 만큼 차의 농도 조절이 쉬워서 좋다. 이번에는 조금 덜 진하게 마시기로 한다. 찻잔을 많이 모았지만, 결국엔 매번 쓰는 애들로만 고른다. 로열 칼돈의 빈티지 찻잔 트리오, 그리고 웨지우드의 퀸즈웨어 크림색 데미타스잔으로.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 같은 건 없어도 된다. 크래커에 크림치즈만 올려먹어도 충분하다. 손끝으로 찻잔의 따뜻함을 느낀다. 매일 붙어있는 우리는 아직도 할 말이 너무 많다.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이곳이야말로 우리의 작은 살롱이다.
아침에 따뜻한 호지차 한 잔, 오후의 나른함을 깨우는 커피 한 잔, 그리고 대화를 나눌 때면 홍차 한 잔. 이렇게 소소한 습관들이 모여, 일상은 더욱 의미 있어진다. 일상적인 습관으로 성취감을 얻는 힘을 '일상력'이라고 하던데 이런 반복되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나만의 '일상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 같다. 그저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나 자신을 다듬어가는 과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