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오면 뻗어 자고 다시 출근하고의 반복인 요즘입니다.
문득,
저의 30이 이렇게 지나가는 게 굉장히 싫었습니다.
이룬 거는 없어도, 변화 또한 없는 것은 더더욱 싫었습니다.
집 한 채를 바랐다기보다는 (사실 바랬지만)
제 삶이 너무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결심했죠.
진짜 살을 빼기로
그렇다면 그전에 올린 그동안의 무수한 다이어트 글을 가짜냐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성공하지 않았을 뿐.
하하
이번에는 성공만을 향해 다시 달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항상 트레이너 선생님과의 규칙을 어기고 먹던 야식도 내려놓게 됐습니다.
개인 운동도 가구요.
그런 저의 오늘 하루는 자기 효능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한편으로는 '아, 내가 자부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부심, 자기 효능감 등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낀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는 것도
같이 느꼈습니다.
넘치는 자기 효능감 속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동안은 왜 다이어트에 실패했을까.
나와의 약속을 모두 깨버렸을까.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살을 빼고, 영어 공부를 하고, 돈을 저축하는 저는
분명히 예전과 달라지고 다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안 달라질 수 있어도 그렇게 살고 있는 제 삶 속의 저는, 주체감을 가지고 삶에 임하고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이 모든 걸 다 알고 그렇게 사는 게 제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도
실행하기가 싫었습니다.
마치 아이가 엄마의 양수 속에서 편안하게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그 속에서 나오기 싫었습니다.
변화는 분명 제 삶의 새로운 장면을 가져와 줄 것이지만
그 행위는 저의 무기력을 이기진 못했습니다.
무기력 속에서 양수 같은 안전지대 안에서만 지냈습니다.
하지만 출산도 태아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처럼 저 또한 그렇게
선 밖으로 밀려나서 변화라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가장 큰 동기는 서른 살이라는 나이였습니다.
우울증이 낫길 바라는 마음보다는
아무런 변화 없이 평범하게 흘러가는 나날이 싫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건 제 몸이었고
그렇게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저는 우울증이 낫길 바라며,
무기력이 타파되길 바라며 다이어트를 시작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우울의 끝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치료 종결은 저와 먼 단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변화를 바라며 시작한 다이어트는, 저에게 잊었던 자기 효능감과 자부심을 일깨우고, 다시 글을 쓰게 하고, 삶의 안전선에서 나와 다시 걷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그렇게 오랜 시간 무기력과 싸워오던 삶이,
단지 ‘지루하다는 느낌 하나’로 새로운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싸워왔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저는 이제야 준비됐고
그래서 슬며시 발을 안전 선 밖으로 내밀 자신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올랐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