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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Jun 30. 2022

금요일 밤에 생긴 일

양쌤의 another story 17 

 사건은 이러하다. 5월을 향해 가는 어느 따뜻한 봄밤, 건국대 앞에서 친구들을 만난 J는 코로나 시국에 막차 시간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정신을 놓고 모임을 즐겼다. 전역한 후 처음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영접 후, 격리가 끝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웃고 떠들다가 누군가의 외침이 있었으니, 

 “야, 7호선 막차 온다.” 

 그 길로 J는 역을 향해 내달렸고 승차에 성공했다. 오늘은 모친의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그것은 J의 착각이었다. 그 막차의 종착역이 내방역이란 사실을 그는 몰랐다. 4호선으로 환승할 이수역을 코앞에 두고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또 택시 타야겠네’      


 그러나 한밤의 내방역은 J의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어떻게든 모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J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일단 이수역까지 가면 거긴 택시가 많을 거야. 한 정거장쯤이야.’ 

 J는 달리기 시작했다. 5분 남짓. 생각보다 뛸 만하다며 이수역을 두리번거리는데 눈에 띈 것은 택시가 아니라 ‘따릉이’였다. 따릉이?! 한밤에 안양천을 따라 자전거 타는 걸 좋아했던 J는 따릉이를 보는 순간 번쩍! 아주 멋진 생각이 떠올랐다. 

 ‘2시간만 가면 돼, 게다가 2천 원!’      


출처 : pixabay.com

  

 코로나 난리를 겪으며 모친의 갖은 구박에도 꿋꿋하게 택시로 귀가하곤 했던 J는 그만 따릉이에게 홀리고 말았다. 택시를 타고 집까지 가면 이만 원이 훨씬 넘을 텐데 너무나 가성비 좋은 선택지로 보였던 것이다. 

 J는 따릉이 앱을 급하게 깔았다. 원래 별것도 아닌 게 급할 때는 발목을 잡는 것이 정석. 앱을 깔고 따릉이에 엉덩이 붙이는 데만 30분은 된 듯했다. 

 ‘서울시를 넘어가면 벌금을 내야 하니 일단 금천구청까지 가고, 거기서 석수역까지 뛰어간 다음 에브리바이크로 집에 가는 거야.’ 


 그렇게 사당역까지 온 J는 급작스레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이걸 타고 안양까지 가겠다고? 제정신이냐?’ 

 따릉이는 그저 따릉이일 뿐. 따릉이를 과대평가했다는 걸 J는 사당역에 와서야 알았다. 귀가 계획은 다시 택시로 선회했지만 돈이 있어도 탈 수 없는 게 금요일 밤 택시라는 사실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때 울리는 J의 메신저. 

 

  (모친) 오늘도 외박이군(12시 넘으면 외박). 훌륭하네. 

    (J)  엄마, 택시가 안 잡혀. 진짜. 

 J의 모친은 메신저 확인과 동시에 전화를 걸었다. 

 “네가 재벌 집 아들이냐? 툭하면 택시야? 막차 끊기기 전에 다니라고 했잖아. 집에 들어오지 마!” 

 “엄마, 집에 너무 가고 싶어.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어쩌라고. 몰라. 알아서 해.”      

 

 모친은 J가 한번은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다 싶어서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모친의 마음 한 자락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혼자 낯선 곳에서 택시를 못 잡아 오도 가도 못하고 어쩌나 싶었다. 헌병 완장을 찬 늠름한 모습의 J는 어느새 한없이 작고 연약한 그녀의 ‘baby’가 되어 버렸다. 운전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주소지의 시 경계를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는 모친은, 어떻게든 차를 끌고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하나 곤히 잠든 남편을 깨워야 하나 안절부절못했다.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J가 무사히 귀가 중이라고 전화를 했다. 카카오 택시 블루가 J의 간절한 부름에 뒤늦게 응답을 한 것이다. 뭘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모친은 기운이 쏙 빠져나간 것 같았다.     

 J는 이틀에 걸쳐 모친의 가슴을 졸이게 한 잘못을 싹싹 빌었다. 모친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갑을관계를 따지자면 분명 자식이 갑이라고 생각했다. 맨날 큰소리는 치지만 자식 문제라면 금세 새가슴이 되고 마는 게 부모라는 생각도 했다. 남편에게는 다 큰 자식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라고 당부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러지 못하고 안달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너 군대에 있을 때가 차라리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다시 군대 가라.”

 모친은 겨우 이런 말로 새카매진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밤에 일어난 사건은 J가 모친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갖은 애교를 부리면서 마무리되었다. 

 진정 불타는 금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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