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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Jul 28. 2022

한여름 밤에 읽는 시

양쌤의 another story18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중복이 막 지난 한여름 밤 나는 난데없이 백석의 시를 떠올렸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이 시에 대해 들은 얘기는 많지만, 굳이 그 얘기들을 떠올리며 읽고 싶진 않다.

시가 시인의 품을 떠나 읽는 이의 눈과 머릿속을 헤매는 순간에 시인의 의도나 타인의 해석은 그저 훼방꾼일 뿐이다.

나는 오늘 밤, 그저 하얀 눈이 푹푹 나리는 겨울밤과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백석과 아름다운 나타샤와 흰 당나귀만 생각한다.

'알라딘 중고서점 산본점' 시인들의 초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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