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내내, 오는 중이네요.
바람의 결이 달라졌어요.
휘리릭 마음을 흐트러뜨리더니
길을 하나 내버렸어요 .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니
밤이 한참 늦었어요.
냉장고의 소음도 없었더라면 참 밤이 심심할뻔 했어요.
지금 무얼 하고 계신가요?
잠들지 못했던 밤을 세고 또 세고
잊혀질 기억들을 깨워 온 밤을 소란스레 보내고 계신가요?
벌써 나뭇잎들이 스스로 떨어질 준비를 시작했어요.
나는 여전히 땀 흘리며 열린 창 앞에 앉아 있는데 말이지요.
달이 스윽 창을 훑고 멀어집니다.
고요히 눈을 맞춘 달은
한눈팔기 무섭게 사라집니다.
달은 생각보다 아주 민첩하게 시간을 맞이합니다.
화분들도 피곤한 기색을 감출 수 없을 때쯤
창을 닫으러 나가보니 아직도 잠들지 않은 창이 남아 있네요.
나도 잠이 오진 않지만,
지금이라도 잠을 자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를 게으른 나의 아침을
정성껏 맞이하기 위해서요.
이제 정말 자야겠어요.
27층, 남쪽으로 난 창 앞에서 만난 보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