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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Oct 20. 2022

소곤소곤

양쌤의 another story 23

가을은 내내, 오는 중이네요.

바람의 결이 달라졌어요.

휘리릭 마음을 흐트러뜨리더니

길을 하나 내버렸어요 .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니

밤이 한참 늦었어요.


냉장고의 소음도 없었더라면 참 밤이 심심할뻔 했어요.

지금 무얼 하고 계신가요?

잠들지 못했던 밤을 세고 또 세고

잊혀질 기억들을 깨워 온 밤을 소란스레 보내고 계신가요?

벌써 나뭇잎들이 스스로 떨어질 준비를 시작했어요.

나는 여전히 땀 흘리며 열린 창 앞에 앉아 있는데 말이지요.


달이 스윽 창을 훑고 멀어집니다.

고요히 눈을 맞춘 달은  

한눈팔기 무섭게 사라집니다.

달은 생각보다 아주 민첩하게 시간을 맞이합니다.


화분들도 피곤한 기색을 감출 수 없을 때쯤

창을 닫으러 나가보니 아직도 잠들지 않은 창이 남아 있네요.

나도 잠이 오진 않지만,

지금이라도 잠을 자야 할 것 같아요.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를 게으른 나의 아침을

정성껏 맞이하기 위해서요.

이제 정말 자야겠어요.

27층, 남쪽으로 난 창 앞에서 만난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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