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다. 친하지도 않은데 이 아줌마는 나만 보면 맨날 일하냐 노냐 묻는다. 우리 집은 27층이고, 느려터진 엘리베이터 때문에 이 아줌마랑 만났다 하면 열 받는 대화를 피할 길이 없다. 누가 있든 없든 나한테만 묻는다. 예전에 누가 나더러 살림 못 할 것처럼 생겼다고 하더니 내 얼굴이 날라리 주부의 관상인 건가? 아님 그냥 찍힌 건가? 씻지도 않고 모자 뒤집어쓰고 나갈 때나 차려입고 나갈 때나 똑같이 묻는데 설마 다른 사람인 줄 알고 물어보는 건 아니겠지.
“난 아직도 일해. 놀면 뭐 해? 일하는 게 좋지.”
내 용돈이라도 버는 지금은 대충 맞장구라도 치지만 예전엔 그저 ‘웃지요’. 우리 엄마도 시어머니도 아무 말 안 하는데 왜 남의 집 딸이며 며느리인 내가 전업주부인 것을 혼내듯 말하는 것인지, 왜 나는 또 주눅이 들었던 것인지... 아, 분하다.
OO층 아주머니. 제가 그때는 아무 말도 못 했는데요.
제가 자칭 고급인력인데 자발적으로 백수의 길을 택했거든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도 않잖아요? 오라는 데 없어도 갈 데 많고, 또 할 일은 얼마나 많은지 백수의 삶을 좀 즐겨본 주부들은 다 알거든요. 아, 아주머니는 잘 모르시겠군요.
가사노동에다 봉사활동, 자기 계발, 정보 교류, 재테크 등 사회 및 가정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면 놀고 먹는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단 말씀이지요.
통장을 채우기는커녕 텅텅 소리 나게 할 일만 골라 한다고 생각하지도 마세요.
다~ 이 나라 경제발전을 위한 실물경제의 순환 차원에서 쓸 만큼만 쓰는 것이니 이제 그 삐딱한 눈초리 좀 거두시고 편안하게 인사 나눠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