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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Feb 20. 2023

오늘의 커피

양쌤의 another story 38

 학교 앞 원룸으로 독립한 아들은 주말에만 집에 온다. 처음엔 매일 문자와 전화를 주고 받았지만, 얼마 안 가서 하루 건너뛰기도 하고 아주 늦은 밤 굿나잇 인사만 나누기도 했다. 나도 그 나이에 자취했는데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 그리 걱정할 게 뭐 있나 싶기도 했다. 다만 시험 기간이라 집에 오지 않은 주말에 (희한하게 어찌 알고 수작을 거는 것인지) 보이스피싱에 낚여 내 핸드폰이 탈탈 털리기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어서 돈 관련 이야기는 문자 대신 전화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던 며칠 전 저녁, 스키장에 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돈도 넉넉히 주었는데 전화가 왔다는 건 희소식이 아니라는 거다. 엄마, 아빠가 얘기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하자 동생에게 전화를 건 아들이 “살려줘~” 하고 소리쳤단다. 

 스노보드를 타다 넘어진 아들은 그길로 구급차를 타고 바로 서울로 이송되었고 4일이나 부기가 빠지길 기다려서 드디어 오늘 수술했다. 

 “엄.마. 농구하고 싶어. 농..구.. 농구할래.” 

 수술실에서 나와서 내가 이름을 부르자 아들이 게슴츠레 눈을 뜨더니 대번에 농구 타령을 했다. 

 “엄, 마. 농. 구. 농구할 거야... 헤 롱 헤 롱해.” 

 이 기시감은 뭐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수면내시경을 하고 나온 연예인이 막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하더니 이게 그건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엄 마 농 구. 헤롱헤롱해. 엄마~ 엄마~ 농구할 거야.”

 “응 그래그래. 농구 흐흐 나중에 하면 돼지.”

 얘가 별 내색 안 하더니 걱정 많이 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꽉 찬 스물세 살 아들이 초등학생처럼 어찌 들으면 일부러 장난치는 것처럼 엄마를 자꾸 불렀다. 

 쬐끔 민망하기도 해서 아들이 엑스레이 찍으러 들어간 사이 침대를 이동해주신 남자간호사에게 물었다.

 “얘가 지금 수면마취가 덜 깨서 잠꼬대하는 그런 거겠죠?”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제가 보기엔 엄마한테 어리광부리는 거 같은데요? 흐흐흐”

 “아 흐흐흐 그래요?”

 “남자는 나이가 드나 안 드나 그래요. 어릴 땐 엄마한테 나중엔 마누라한테 흐흐”

 엑스레이 찍고 나오자마자 또 농구 타령이다. 새로 산 농구공 택배 왔던데 그거 들고 언제 농구하러 가려나.

 “엄, 마. 농. 구. 농 구~ .”

 “알았어. 그만해. 그래그래, 조용히 해.”

 ‘엄마 아직 귀 안 먹었다. 아들아, 그만 부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욕 안 하는 것만도 다행이긴 하다만.’

 병실에 들어와 침대로 옮기는데 침대 헤드부터 발 쪽 보드까지 여유도 없이 딱 맞게 누운 아들을 보며 간호사가 말했다.

 “덩치는 산만 해서 아기네 아기. 흐흐흐.” 

 하마터면 맞는 침대도 없을 뻔한 다 큰 아들이 수술을 마치고 나와서 엄마를 불러대는데 사실은 어찌나 귀엽던지. 예전에 내가 둘째를 낳고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그렇게 엄마를 불렀다더니 그런 것도 닮은 건가.     

스타벅스 성수낙낙점 오전 9시 / 병원 카페 아메리카노

 수술 후 두 시간 금식 후 나온 첫 식사를 챙겨 먹인 후 병원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아무리 커피가 고파도 공복에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바나나 두 개로 이미 빈 속을 달래놓았다. 3일 동안 두통으로 참았던 커피, 이틀 동안 제대로 자지 못한 나에게 밥보다 필요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오기도 전에 계단으로 신속히 내려갔다. 

 오늘의 커피는 너다. 커피를 들고 잠깐 창밖을 봤다. 건대역과 성수역 사이, 성수동 카페거리가 코 앞이지만 그림의 떡이다. 입원한 다음 날, 아침 일찍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틈으로 스타벅스에 다녀온 걸 빼고는 아직 이 동네 커피 맛을 못 봤다. 

 커피를 수액 거치대에 올려놓고 아들을 봤다. 정신을 차리자 핸드폰부터 살피고 있다.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아픈 줄을 모르니 나도 이렇게 글을 쓸 여유가 있다. 커피를 크게 한 모금 마시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병원 카페 커피 맛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몸과 마음에 평화를 준다. 피곤함도 걱정도 잠시 잊었다.


 아들~ 내일 오후엔 엄마랑 성수동 스페셜티 커피 한잔할 수 있으면 좋겠네. 카페 검색해놨는데 엄마가 얼른 가서 사 올게.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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