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엔 나무늘보
양쌤의 another story 53
나무늘보. 나무늘보? 왜?
동물로 태어난다면 어떤 동물로 태어나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나무늘보를 떠올렸다. 현존하는 포유류 중에 가장 느려서 천적이 접근했다가도 살아있는 줄 모르고 지나간다는, 가만히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동물.
그런 나무늘보로 살아가고 싶은 걸까?
늦잠을 자고 늦은 아침을 먹고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잠시 비멍에 빠졌다. 모처럼 한가로운 오전이다. 방충망이 있는 창 쪽으로는 산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빗방울이 방충망에 빈틈없이 들어찼다.
메모해 두었던 글들을 연결할 사이의 단어들과 문장들은 퍼뜩 떠오르지 않고 괜히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앞뒤 베란다를 오갔다.
오늘, 오늘, 오늘. 오늘 할 일에 집중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오늘도 즐거웠고, 뭔가를 열심히 하긴 했는데 왠지 헛헛하다. 진짜 중요한 걸 빼먹은 건 아닐까.
“뭣이 중헌디?”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뭘까. 일정표에 기록할 필요도 없이 늘 해야 하는 일들. 하지만 일정표에 기록된 일들을 먼저 하느라 뒷전으로 밀리다가 결국 못하고 또 못하게 되는 일들.
급한 일과 중요한 일 중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중요한 일에 두어야 한다는데 나는 실속 없이 허둥대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미루어지는 일들에 대한 조급함이 소용돌이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무늘보가 생각났나 보다.
나무늘보는 땅 위에서 세상 느려터졌어도 큰일을 해결할 때 빼곤 나무 위로 내려올 일이 없으니 큰 문제없고, 물과는 상극인 나와 달리 헤엄은 빨리 칠 수 있다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하루 중 20시간 가까이 나무에 매달려 자며 거의 움직임이 없어서 많이 먹지도 않으니 삼시세끼 걱정할 것도 없다.
시력과 청력이 좋지 않아서 답답할 때도 있겠지만 안 보고 안 들어도 될 것들을 자연스레 안 보고 안 들을 수 있으니 정신 건강에 좋겠다.
웃지 않아도 웃는 듯한 얼굴과 일관되게 느긋한 움직임에서는 묘하게 인생을 달관한 고수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나무늘보의 삶이 부러운 건 아니다. 전혀 급하지 않고 욕심부릴 필요 없는 삶에서 내면과 외면이 조화롭게 느림을 즐기고 있는지 그 무해하고도 평화로운 시간을 누려보고 싶을 뿐이다.
쫓고 쫓기는 동물의 세계에서 살짝 물러나 관조하는 나무늘보로 태어나는 것,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