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걷기 위한 '신효근'님의 지혜와 고민들
베를린에 거주하는 나는 가끔 서울에 가면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분명 일주일이 걸릴 것이라던 행정처리도 하루 만에 완료되었다는 친절한 문자가 오고, 오후에 핸드폰으로 몇 번 쓰윽 누르면 다음 날 새벽에 문 앞에 와있는 배송까지. 과연 이 서울이란 도시에서 빠르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 질문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그렇기에 빠르게 자신만의 속도로 변화하는 도시의 흔적은 일정하게 남지 않기에 서울에 대한 기록은 더 진귀하다.
여느 장소에 대한 기억과 흔적에 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으레 '사람'이었다. 어릴 적에는 부모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질문을 던지고, 후에는 학문적으로 책에게 그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서울의 공간에 대해 친절하고 쉽게 먼저 자신의 기록을 남겨주는 이가 있으니 바로 '서울은 건축'의 저자 신효근 님이다.
41개의 보석과 같은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공간들에 대한 기록이 담긴 '서울은 건축'이라는 책은 단지 사진과 크레디트가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 서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이를 서울에 초청했을 때, 어느 공간에 대한 그동안의 역사와 사건들과 알토란과 같은 정보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공간가이드북이다. 스스로 명칭 한 '좋은 경험을 주는 공간'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좋은 기록'이다.
개인의 경험과 기록을 토대로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간 '서울은 건축'이란 책은 보면 볼수록 놀라움의 연속이다. 미쳐 다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서울의 곳곳에 위치한 훌륭한 경험을 제공하는 훌륭한 공간들에 대한 소개가 너무 편안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특히, 각 공간들의 핵심을 명확하게 짚은 사진들은 한참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나는 도봉구에 위치한 '평화문화진지'에 대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공간이 가진 그때까지의 기록과, 역사와, 변천과정은 물론 멋진 사진까지 포함된 신효근 님의 기록은, 평화문화진지의 설계자인 '코어건축사사무소'뿐만 아니라 서울을 경험하는 모든 이가 고마워할 만한 멋진 기록이다. 아직도 엄연히 분단국가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분단의 역사가 도심 깊숙이 새겨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물론 현재는 열린 공원의 형태로 다양한 목적의 다양한 사람들의 쉼의 배경이 되는 이 공간은 책에서 읽으며 당장 방문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5년 동안 5백 군데가 넘는 공간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는 저자의 기록은 그래서 더욱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든다. 과연 어느 곳에 대한 자료를 어떻게 정리해 우리와 공유하게 해 줄지. 나는 바로 저자의 인스타그램을 찾아내 따라가 보기로 했다. 41개뿐만 아니라, 서울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머무는 곳 어느 곳이라도 흥미 넘치는 사진과 이야기들을 접하며 '좋은 경험'을 통해 좋은 공간들에 대해 조금 더 자유로이, 편하게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