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로!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지난 2월 올렸던 ‘미래로의 여행’ 편에 처음 등장한 ‘바로찌 베이가’ (Barozzi Veiga)라는 사무실에는 진작에 이메일로 지원을 해 놓은 상태였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라도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있으면 우편으로, 그보다 살짝 우선순위는 밀리지만 제안이 온다면 고민이 될 것 같은 사무실에 이메일로 지원서를 넣곤 했다. 무엇보다 ’ 지천에 깔린’ 마드리드의 여러 사무실을 두고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는 것은 나에겐 별로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여름에 한국에 다녀온 뒤에도, 페르난도의 사무실에 다닐 때도 여기저기 이메일을 보내고 회신을 보내는 과정은 반복되었다. 보통 무보수로 시작하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는 식의 애매한 답변이 오곤 했다. 그것도 정말 가고 싶은 ‘A그룹’의 사무실에선 연락이 안 오고 애매한 사무실에서 애매한 답변이 오곤 했다. 뭐 그러니 나도 애매한 답변으로 넘기곤 했다. 그러다 바르셀로나의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일단 제대로 이해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뒤 회신을 보냈다. 최초 이메일을 보낸 뒤 6개월이나 늦게 온 답변은 ‘아직도 올 생각이 있느냐’였다. 그 길로 바로 회신을 보내 면접 날짜를 잡았다. 왠지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장 싸게 여행하는 방법은 버스를 타는 것이다. 그것도 한국처럼 ‘우등’과 ‘일반’이 있는데 거기서 일반을 타면 시간이 8시간이나 걸리는 대신 50유로 정도면 왕복을 할 수 있었다. 고속 기차를 타면 2시간 반에 200유로였고 비행기는 40분에 천차만별의 가격이었다.

밤 12시에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타면 아침 7시 반쯤에 바르셀로나 산츠(Barcelona Sants)역에 도착한다. 약속시간까지 남은 두어 시간은 긴장한 체 머릿속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되새겼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의 왕성한 호기심은 도시를 구석구석 둘러보게 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스페인의 도시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경쾌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햇살이 쏟아지는 도시엔 비도, 우산도, 울적한 마음도 필요 없어 보인다. 진짜 햇살은 사람의 마음을 ‘만든다’. ©HK Shin

외국어는 당시의 기분과 분위기를 많이 탄다. 모국어는 툭 치면 바로 탁 하고 나오지만 외국어는 아무리 익숙해져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에너지를 내 몸에서 소비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 날은 바르셀로나의 밝은 기운에 기분이 좀 좋아졌는지 말도 괜찮게 나왔고 하고 싶은 얘기도 다 했으며 듣고 싶은 얘기도 다 들었다. 다행히도 알베르또는 나의 포트폴리오를 다 본 모양인지 나의 작업에 대해서 보다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결국 언제 시작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불과 1년여 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같은 질문에, 나는 이번에는 현실에 맞춰 이야기를 했다. 이사를 오고 거처를 정하고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2달 뒤인 2011년 1월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그도 흔쾌히 그렇다고 하고 그렇게 면접은 끝났다. 복잡했던 머릿속과 다르게 상황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마드리드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그곳의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페르난도와 크리스티나를 만났다. 이래이래 하고 저래저래 해서 내년부터 다른 곳에서 일하기로 했다고. 둘은 아쉬워했지만 응원해줬다. 마드리드 토박이로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것이 그들에겐 조금 생소했는지 진짜 갈 거냐는 질문을 반복하곤 했다. 그래도 연말을 보내고 정말 마드리드를 떠날 때까지 그 둘은 고맙게도 끝까지 나를 챙겨줬다.

그리고 나의 스타, Rafael Moneo(라파엘 모네오)의 신간 "Apuntes sobre 21 obras"(21개 작업에 대한 기록)를 선물해줬다. 나에게 이 책은 마드리에서의 시간의 마침점 같다. 이 책은 그가 일생동안 작업한 21개의 작품에 대해 직접 이런저런 일화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더듬더듬하지만 스페인어로 그가 하는 말을 듣는 듯한 느낌은 나름 행복했다. 몇십 년이 지난 작업들도 새로운 도면들과 사진들과 함께 보니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진솔한 건축가의 자기 고백 같은 느낌도 있다.

당시에는 허무한 느낌과, ‘여기까지 인가 보다’라는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거기가 가장 ‘아름다운 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내가 거기서 일했다면 내가 잘 소화를 했을지, 내가 원하는 ‘해답’을 들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여태까지 공개됐었던 도면들과 사진들 외에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공개되었다. 거기에 담담하게 풀어낸 자신만의 기록. ©HK Shin

최근에 영화배우 L씨에 대한 기사를 봤다. 이야기인즉슨, 영화계가 사랑하는 배우와 대중들이 사랑하는 배우가 수렴하는 경우가 드물어 애를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배우는 둘 모두 만족시키는 배우라고.

내가 그렇게 노래 부르는 라파엘 모네오는 건축가들이 더 사랑하는 건축가이다. 알면 알수록 더 깊게 빠져드는 재미가 있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이 책에 열거된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건축계가 더 사랑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대중들이 더 사랑하는 작품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둘을 만족시키는 것은 줄타기를 하며 균형을 잡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내가 그를 쫓아 2년여 동안 마드리드를 헤매며 배운 것은 이 '균형'의 개념을 깨우친 것이다.

Palacio Real de Madrid ©HK Shin

어쨌거나 그렇게 난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필살의 의지로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그 절박함이 이 시기의 기억을 더 또렷하게 하는지 이삿짐을 보내고, 배낭을 메고, 이민가방을 들고 그 싸구려 버스를 타고 가던 것도 기억난다. 처음에 마드리드에 갈 때 이민가방 하나, 배낭 하나였던 나의 짐은 그 사이 8박스로 불어났다.


마드리드 ‘대가’의 사무실에서 도제식으로, 선생님에게 배운다 생각하고, 이미 장성한 사무실에서 일하려던 나의 콘셉트는 이제 바르셀로나의 ‘형’ 정도 되는 젊은 사람들이 가득한 사무실에서 같이 성장해 나가는 콘셉트로 바뀌게 되었다.



©Amarillo Fósil Desierto
Ayuntamiento de Murcia, Spain/ Rafael Moneo / 1991~1998 / ©HK Shin

라파엘 모네오의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한 가지 확신은, 그에겐 '그냥'이 없다는 것이다. 이 '그냥'이라는 마법 같은 단어는 예술혼이 불타오를 때 '뭐 어때'라는 식으로 용감해지는 순간을 가리키는데 건축은 건축주의 동의도 있어야 하고 너무 거센 대중들의 반대도 곤란하며 현장관리자의 협조도 필요하고 최종적으로 사용자가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 꽤나 까다로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그의 사무실에서 일했다면 어떤 이에겐 '그냥'이라고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설득해 현실로 만들어가는지를 배우지 않았을까 싶다.


Edificio del Rectorado de la Universidad de Alicante, Spain / Alvaro Siza / 1997 / ©HK Shin

알바로 시자(Alvaro Siza)의 건축을 흔히 '시'적인 건축이라 한다. '시'적이라 함은 평서문과 같이 문장의 구조, 어법, 단어, 맞춤법 등이 골고루 잘 짜인 '표준어'적인 것이 아니라 의미를 함축하고 여러 가지 수사법을 동원하기도 하는, 평서문과 다름을 지칭한다. 그의 건축이 그렇다. 보는 이에 따라 불필요해 보이는 '장식'을 동원하기도 하며, 딱히 용도가 보이지 않는 장치들이 있다. 위의 사진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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