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냐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사무실에선 스위스 로잔에 주립 미술관을 짓는 큰 공모전에 참가 중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국제 공모전은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 전 이미 등록 단계에서 꽤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몇 팀이 경쟁을 하게 되는지, 익명으로 혹은 기명으로 제출하는지, 최종 마감에 대한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수많은 '규칙'들이 정해지는데 사실 참가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경쟁자들이다. '에이... 저 사람들하고 우리가 붙어서 되겠어' 하는 자조적인 목소리부터 무작정 할 수 있다는 '근자감'까지, 그 반응도 각양각색인데 나의 반응은 줄곧 후자였다.

어쨌거나 등록 단계인 1차 관문을 통과한 사무실은 20개 남짓 되었고, 그 위치나 규모 등은 정말 천차만별이었다. 우리 사무실 말고도 몇몇의 스페인 사무실이 같이 참여했는데 단연 이 사무실이 가장 젊은 사람들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참가들 명단을 보면서 '이건 누구지? 들어보지 못한 사무실인데'라는 반응을 보이듯, 다른 이들도 우리에게 비슷한 시선을 보냈으리라.

가끔은 모두의 의욕이 지나쳐서 충돌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 토론이 '생산적'이기만 하다면, 결국 모두에게 '득'이 된다. EBV / 2011 ©HK Shin

아마도 더 연륜 있고, 더 경험이 많으며 공모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뚜렷한 비전과 밑그림을 가지고 있는 소장이 있는 , 수직관계가 확실한 사무실의 경우, 공모전을 진행하는 방식 및 토론의 문화가 조금 달랐을 것이다. 전체적인 프로젝트의 방향이 소장에 의해 결정이 되고 직원들은 기능적인 문제만 푸는 정도의 토론이 될 것이다. '어떻게 리더의 밑그림을 제대로 구현할 것인가' 이렇게 말이다.


우리는 제일 연장자인 알베르또에서 제일 막내인 신입사원까지 9살 차이였다. 뭐.. 더 드라마틱하게 "동갑이다!" 정도 뱉으면 좋았겠지만.. 아무튼 왠지 선후배들끼리의 막역한 토론 분위기였다. 더 재미있는 건 두 명의 소장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의 경쟁구도였다. 다들 욕심이 대단해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했고, 다음 날 너의 제안이 더 멋진 거 같아라는 멋진 말도 할 줄 아는 꽤나 바람직하고 생산적인 분위기였다.


4달 내내 서로 의견이 달라 토론으로 몇 시간 동안 열을 올리기도 했고, 세계의 많은 미술관들을 자세히도 들여다봤다. 정말 너나 할 것 없이 좋은 의견이면, 그리고 설득력이 있으면 공감하고 밀어붙였다. 그 공모전에 매달린 4달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시간이었다. 다 같이, 토론으로, 물론 그 중간에 소장들의 결정적인 한방도 있었지만, 만들어낸 팀원들 모두 만족해한 작업이었다.


사무실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계속 일하다 보면 볼 수 있는 종종의 미친 짓들은 전 세계 어딜 가나 비슷하다. EBV / 2011 ©HK Shin

작은 사무실의 기초는 '멀티 플레이어'정신이다. 세심하게 분업화가 아니라 급하면, 그리고 필요하면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하는 작은 구조에선 불이 나면 모두가 출동하는 '소방관'이다. 특히 이렇게 크고 중요한 공모전을 한다면 결국 마감 때에는 모든 직원이 하얗게 불사르는 것이다. 그렇게 7명의 사무실 직원 모두와, 로잔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일종의 현지 파트너 같은 사무실에서 온 3명의 소장들도 합심해서 치열하게 마감을 했다. 그리고 그 3명이 마지막 출력 결과물을 직접 비행기로 들고 로잔으로 가 제출을 했다.


치열한 마감을 끝내고 며칠을 쉬다 다시 사무실로 모인 직원들은 하루 종일 인터넷에 매달려 새로운 공모전을 찾아다녔다. 벌써 스페인 경기는 얼어붙을 때로 얼어있었고 더 이상 스페인 내에 공모전은 나오지 않았다. 공모전이 문제가 아니라 건설경기가 얼어붙어 진행 중이던 것들도 취소가 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할 일을 스스로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러던 중 사무실 전체 회의에서 앞으로 2달까지만 급여가 지급될 것이라고 했다. 알베르또는 대놓고 각자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다. 그래, 어차피 바르셀로나 오지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도 하고 있었으니 그냥 들렀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자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이삿짐을 보내는 시기, 귀국 시기도 정해졌었다.


그리고 2011년 5월 말, 웬걸, 그 공모전이 당선됐다. 파브리찌오가 사무실 반대쪽에서 얼굴을 잡은 채로 복도로 뛰어오더니 ‘¡Hemos ganado Lausanne!’(우리가 로잔에 당선됐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심사위원들의 결정이 끝난 뒤 공개 보도 자료를 뿌리기 전, 당선자에게 살짝 '비공개'로 귀띔을 해주는 일들이 있는데 그 전화를 마침 파브리찌오가 받은 것이다. 마침 알베르또는 출장 중이어서 저녁에 술 마시는 자리에 합류했다. 그 날은 그냥 그때부터 쭈욱 술을 마셨다. 공모전도 공모전이었지만 제출 후 1달여간의 시간의 마음고생이 그 순간을 더 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짓말같이 나의 스페인 생활은 마침표를 찍지 않게 되었다.


롤러코스터와 같았던 이 마법의 4달은 아직도 나에게 '공모전'을 대하는 자세의 '기준점'이 되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합심이 되면 발휘되는 마법 같은 시너지가 있다. 팀원들 중 어느 하나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인력의 누수가 발생한다. 공모전의 규모가 커질수록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기는 더 어렵고 하나로 합심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그래서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은 계속해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제출안들의 모형을 비교한 사진이다. 대지는 버려진 기찻길과 도심의 끝자락 사이 공간이다. 지금 봐도, 우리의 배치는 정말 정답이었다. ©Barozzi Veiga
MCBA(Musée cantonal des beaux‑arts Lausanne)는 지난달 길고 긴 공사를 마치고 '내부 오픈'행사를 하였다. 오는 10월 공공에 공개된다.
046 EBV_MCBA Final Exterior 02 large retocada.jpg ©Barozzi Vei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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