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처음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는 가우디에 대해 굳이 구경하려고도, 많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많은 매체로 보아와서 그런지 익숙한 것 같기도 했고, 왠지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아는 게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르셀로나에 살아요’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상대방이 하늘을 찌를듯한 검지를 나에게 가리키며 ‘가우디!’하고 외치는 상황이 은근 반복됨에 따른 피로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다 보니, 그래서 이곳저곳을 방문자들과 함께 다니고, 그러기 위해 이래 저래 찾아보고 하니, 나의 오만과 편견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가우디가 있었다.
가우디의 작품들은 외형적으로 워낙 화려하기 때문인지 그의 '건축적 고민'이나 '꼼꼼한 노력' 등은 쉽게 평가절하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언제 지어졌고 얼마나 크고 등의 여느 흔한 가이드북에 등장할 만한 사실들만 어깨너머로 봤을 뿐 건축장이로서 진지하게 들여다 보고자 하는 의욕은 한참 후에나 왔다.
격자 도시 바르셀로나의 주거유형 중 가장 대표적인 유형은 두 가지이다. 모서리에 위치해 두 면이 모두 외부 거리에 접한 '모서리 집'들과, 집들과 집 사이에 껴서 한 면만 거리와 맞닿아 있는 '사이 집'들이다. 도시의 블록이 생각보다 커서 채광과 통풍을 해결해야 하는 도심 주거의 질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처럼 보인다. 오랜 시간 동안 바르셀로나의 건축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왔는데 가우디의 까사 밀라 (Casa Milà)도 '모서리 집'으로 역사적으로 아주 귀중한 대안 중에 하나다.
구글 지도에서 보면 바르셀로나 도심지의 집들이 치즈 구멍처럼 생긴 '중정'을 거의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는 통풍과 채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물론 크기에 따라 채광은 어려운 부분도 있다. 위층은 몰라도 아래층은 꿉꿉한 그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까사 밀라의 중정 위치는 이 두 가지 기능적 요구를 잘 수용하면서도 미학적인 부분도 잘 해결한 걸로 평가받는다. 중정이 유연한 형태라 사각지대 없이 중정에 접한 모든 방에 균일하게 바람과 빛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면 까사 바뜨요 (Casa Batlló)는 집과 집 사이에 끼어 한 면만 거리와 맞닿아 있는 '사이 집'유형으로, 채광과 통풍 모두 자유롭고 양호하다. 규모도 까사 밀라보다 작은 편이라 모든 공간의 장식이 더 화려하다.
까사 밀라에 비해 더 화려하고 눈부신 마감과 장식들을 볼 수 있으나 까사 밀라의 중정과 같은 실험적인 면모는 찾기 힘들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들을 벗어내면 주변에 이웃한 흔한 건물들과 그 골격은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대성당은 그 관광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도심 스카이 라인의 형성에도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창조물이 신의 창조물인 자연보다 클 수는 없다 하여 몬주익(Montjuic) 언덕보다 1m가 작다는 이 성당은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지어진 몇 안 되는 바르셀로나의 고층건물들의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첨탑의 꼭대기에서 걸어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탑의 사이사이 공간으로 다르게 변하는 바르셀로나의 전경을 360도 둘러보며 하늘을 걷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돌을 깎아 만든 첨탑의 피부를 관통하며 누비는 쾌감이 있다.
구엘 공원(Park Güell)은 또 다른 '엘리스의 세계'이다. 마치 어느 놀이동산에서 플라스틱 마감으로 본 듯한 흔한 광경의 오리지널을 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공원 근처의 가파른 경사를 외부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과정부터, 입구에서 구불구불 예상치 못한 돌과 나무들의 화려한 움직임, 야외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바르셀로나 전경, 그리고 그 야외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는 공원을 빠져나가는 길까지. 마치 건물의 입구에서 시작해 거실, 부엌, 방, 그리고 옥상을 지나 다시 입구로 나오는 듯한 공간의 이동 동선을 도시 전체를 배경으로, 좀 더 큰 스케일에서 거니는 듯하다. 무엇보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자유곡선들이 사방에서 춤을 추는 광경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한다.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이 많은 가우디의 상상력들은 날씨와 함께 바르셀로나를 각 개인에게 특별하게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만의 특별함이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물한다. 모두가 구경한다고, 나는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고 가우디를 피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자신만의 특별한 느낌을 간직하면 된다.
가우디의 작품들은 입장료도 하나같이 다른 미술관 등에 비해 서너 배 정도로 모두 비싸다. 그러나 나는 다시 가 볼 일이 생긴다면, 주저 없이 카메라를 준비해 다시 한번 복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