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첫 출근'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첫 출근. 왠지 봄날의 꽃 먼지가 흩날리는 대학교 캠퍼스 같은 싱그러운 느낌의 설렘이 가득할 것만 같다. 물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들은 물론이고 잘해야겠다는 의욕도 가득하다. 어떤 이에게는 생존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기대일 수도 있으며, 어떤 이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이직'에 의한 첫 출근일 수도 있다. 음, 나의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출근은 '기대'와 '생존'이었다. 호기심 많은 나의 성격에 기인한,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철 없이 기대하는 궁금함과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다부진 각오, 절대 갈 일 없다고 스스로 거부하던 바르셀로나까지 와서 던지는 마지막 '생존 카드'.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마음속에 여유 따위는 정말 1도 없었던 모양이다.


바로찌 베이가(Barozzi Veiga, 2011년 당시에는 Estudio Barozzi Veiga. 그리고 이를 줄여서 EBV라고 불렀다.)라는 사무실은 스페인 산티아고 꼼포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출신인 알베르또(Alberto)와 이탈리아 로베레또(Rovereto)출신인 파브리찌오(Fabrizio)에 의해 2004년에 바르셀로나의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출발한 젊은 사무실이었다. 그 후 스페인의 제법 큰 2개의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고,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된 즈음에 두 건물을 잇따라 완공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역시 다른 공모전을 통해 수주한 폴란드의 슈체친(Szczecin)이라는 도시의 ‘필하모닉 홀‘의 착공을 앞두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사무실은 더 넓은 장소로 확장을 하게 됐다. 동시에 새로운 사무실 식구로 나와 함께 멘드리지오(Mendrisio)에서 공부한 이태리 친구, 이렇게 둘이 합류하게 된 것이다. 스위스에 있지만 이태리어를 쓰는 지역의 멘드리지오의 건축학교(Accademia di Architettura di Mendrisio, 줄여서 AAM)는 유럽에서 원래 유명했다. 내로라하는 교수진에 걸맞은 졸업생들 수준. 직접 실체를 보진 못했지만 그 명성은 자자했다. 거기서 갓 졸업한 나의 입사 동기 친구는 이태리 소장이, 나는 스페인 소장이 뽑은 셈이었다. 이태리 소장이 멘드리지오 출신의 신입사원을 뽑은 건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스페인 소장이 나를 뽑은 건 내가 생각해도 미스터리했다. 후에 그와 이야기하며 알게 된 것이지만 그도 내가 그렇게 노래 부르던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의 팬이었다. 알베르또는 나처럼 모네오와 함께 일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가’의 작품을 항상 응원하는 젊은 건축가였고 그런 그에게는 내가 '흥미로워'보였던 모양이다.

사무실 이전 기념 파티가 열렸다. 이 동네는 다들 그러는가 보다 했지만 아주 특별한 순간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었다.

마드리드에 비해 바르셀로나에는 이곳처럼 '외지인'들의 사무실들이 꽤 많았다. 이 사무실도 역시 전체 인원의 1/3 정도만 까딸루냐 출신일 뿐 나머지는 나와 같은 '외지인'들이다. 거기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출신 지역의 건축가들이 공부한 곳도 다양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국의 대학들도 있으며 남미, 아시아 등 '해안 도시'에 걸맞은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사무실 이전 기념 파티에서 적절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파티'라 함은 지인의 지인의 지인은 물론, 사돈의 팔촌, 혹은 지나가는 행인까지 함께하는 것이 아닌가. 나 역시 갓 이사 간 집에 같이 살던 3명의 친구들을 초대했고 그들은 또 누군가를 데리고 장소에 도착했다. 아...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노는가 보다고 느낀 건 그게 거의 처음이었나 보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이 때는 벌써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흔든 뒤였다. 미국에 있는 지인들이 말하길, 하루아침에 설계 사무실들이 없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이동이 이어지는 등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건축분야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뒤였다.

유럽에서 가장 취약하다는 PIG(Portugal, Italia, Greece) 이외에 스페인도 외부의 경제 요인에 취약하긴 마찬가지여서 여기저기 당장 굴러가는 현장들은 많았지만 문제는 그다음 일들이 점점 불확실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광란의 파티 가운데에선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이런 '제법 큰 파티'는 그 후에는 다시는 보기 힘들었다.


스페인 내의 건축 공모전은 거의 씨가 말라가고 있었고 그 흐름을 타 너도 나도 외국 공모전에 달려드는 추세였다. 일단 가장 큰 시장은 스위스 시장이었으나 그곳도 워낙 탄탄하게 1부, 2부 리그에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서 공략이 쉽지 않았다. 알베르또와 파르리찌오 역시,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일단 이 둘은 사무실 설립이 빠른 편이었고(2004년에 파르리찌오는 불과 28살이었다.) 스페인에 완공을 앞둔 덩치 큰 작업들이 있어서 웬만하게 큰 공모전에 참가하는 자격 요견에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공모전을 위해 투입된 새로운 인력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자리를 보며 나도 언젠가 저런 자리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Estudio Barozzi Veiga / 2011 ©HK Shin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새로운 도시인 동시에 아예 다른 환경이었다. 원래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정말 막막하긴 했다. 일단 어찌어찌 방을 구하고, 이삿짐을 대강 풀고 출근 준비를 하고, 어떻게 출퇴근을 해야 하나 들여다 보고, 그렇게 첫 출근을 기다렸다. 2011년 1월 2일이 첫 출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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