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어이없이 무료 봉사한 5개월의 인턴 기간이 끝나자 다른 고비가 다가오고 있었다. 비자를 새로 발급받아야 했다. 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받은 비자는 '진짜 수업을 들은' 8개월 이외에 한 학기 정도를 더 등록해 1년짜리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 해에 비자를 발급받으러 갈 때는 다른 사유가 필요했다. 어학공부를 위해 받은 1년의 비자 기간 동안 어이없는 노동착취로 인해 귀중한 시간 몇 달을 날린 셈이었다. 대신 몇 가지 명확해졌다. '1년 더 어학원에 돈을 내고 비자를 연장하는 것은 경제사정상 불가능하다'와 '인턴 정도의 위치로 비자를 요구하기엔 먹이사슬이 너무 강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공립대학교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공립이니 공신력이 있는 것은 물론, 학비도 저렴하니까. 가장 중요한 건, 현지 건축학과 학생들이 아는 정보가 필요했다. 어떤 사무실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등의 그들과 섞여야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이 필요했다.
마드리드 공대(Universidad Politécnica de Madrid) 건축학과(Escuela Técnica Superior de Arquitectura de Madrid, 줄여서 ETSAM)는 스페인의 국가 경쟁력에 비해 아주 양호한 교육의 질과 높은 명성을 자랑한다. 어차피 마드리드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이름이 알려진 건축가들은 필수코스처럼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건 곧 그들과 마주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물론, 꽤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배경과 다르게 그 등록 과정은 정말 복잡하고 짜증 났다!
우선 '석사 과정'보다 '학부 과정'을 택했다. 석사 과정은 수업료 이외에 들어가는 돈이 꽤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궁금해하는 건축가들은 모두 학부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간단한 선택 뒤가 문제였다. 내가 한국에서 4년 동안 건축에 대해 공부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나는 한국의 건축공학과 4년제의 끝 세대로 대학 졸업 당시 120학점 정도를 이수했다. 그러나 마드리드 공대 학부는 450학점을 들어야 졸업이었다. 졸업 취득 학점을 기준으로 1:1로 환산하면 나는 2학기 정도만 이수한 것이었다. 그들의 기준에선 내가 한국에서 들었다는 과목 중에 건축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온갖 종류의 교양과목 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2학년에 편입 가능하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나름 4년제를 ‘졸업’하고 온 사람에게 2학년 수업을 들으라는 것은 굴욕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아니꼬워도 비자를 위해선 그것도 아주 감사한 것이었다. 그렇게 난.... 스페인의 21살들과 수업을 듣게 됐다...
나는 설계과목을 중심으로 수업을 들었다. 모든 과목을 꼭 이수해서 졸업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거니와 듣기 싫은 과목도 있기 때문에 일단 비자 연장에 지장 없을 정도만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어쨌거나 내가 한국에서 실무를 좀 하다가 온 탓인지, 늙어 보인 탓인지, 갓 20살을 넘은 저학년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 건 생각보다 교수들이나 조교수들에게 눈에 뜨였던 모양이다. 조교수 중 한 명이 내게 먼저 파트타임으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말을 걸어왔다!
Lucas y Hernández-Gil Arquitectos
(http://www.lucasyhernandezgil.com)
그렇게 내가 학교에서 만난 페르난도와 그의 여자 친구 크리스티나가 운영하던 사무실은 당시 페르난도 아버지 집의 지하에 있었다(구글이나 아마존처럼). 근무 조건은 일주일에 20시간을 일하고, (20시간 이상은 노동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니 서로 힘들게 하지 말자고 했다.) 100유로를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했다. 그러니 한 달에 400유로의 수입이 생기는 셈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방의 월세가 360유로 정도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었다. 무보수의 인턴을 한 뒤라 난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나의 노동이 현금으로, 그것도 유로화로 환전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들과의 9개월의 동행이 시작됐다.
그 커플은 나랑 비슷한 또래라 우린 정말 친구 같았다. (무엇보다 그들이 참 편하게 해 줬다.) 일하던 중간에 커피도 꼭 마시러 가고, 그러면서 이야기도 하고, 여름에는 군것질한다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다녔다.
사무실에서 하던 작업의 대부분은 개인 주택을 리노베이션 하던가, 신축하는 등의 작업이 주 업무였는데 우리 셋이 모든 일을 나눠했으니 사무실에서 허가 도면까지 하곤 했다. 그중에는 한국에서와 같이 친척의 친척이 어디에 가진 주말농장 같은 곳도 있었고 친척의 친척이 집을 확장하면서 수영장을 만들고 싶어 하다는 식의 아주 친숙한 레퍼토리도 있었다.
페르난도의 아버지도 꽤 오랫동안 활동하신 원로 건축가셨고, 마드리드 공대에서도 교수생활을 오랫동안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라파엘 모네오와 작업도 종종 같이 하셨다고 한다! 페르난도 역시 내가 라파엘 모네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나의 악몽 같던 첫 인턴의 추억도 물론 나눠 주었다. 그 둘은 그 건축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덤덤히 들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더 독한 가십거리도 소개해주었다.
크리스티나는 사무실 일 이외에 가구 및 소품에 관심이 많아서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썼던 제품이나 직접 제작했던 가구들을 온라인으로 파는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만의 뚜렷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색감이나 소품을 선택할 때도,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이미지를 만들 때도, 심지어 가구를 선택할 때도 그녀의 가벼운 터치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곤 했다.
그 사이사이 스페인어로 뚱뚱하다는 뜻의 강아지‘골리’도 돌봤고 틈틈이 아이들을 좋아해 소일거리로 아이들의 파티를 열어주는 행사도 하곤 했다. 이렇게 쓰고 있자니 그녀는 정말 엄청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린 셋은 매일 뉴스거리에 대해 떠들기도 하고 한국에선 건축가로 사는 게 어떤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인식과 근무환경 등에서도 이야기해야 했고 그들에게 상당히 생소한 상황들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건 확실히 '고급 스페인어'에 해당하는 이야기였고 둘의 세세한 배려와 인내에 나의 스페인어는 짧은 시간에 비해 많이 늘었다.
2010년 봄에 일을 시작해 덥고 더운, 그리고 길고도 긴 여름이 되었을 무렵 난 한국에 다녀왔다. 내가 서울을 떠나 있는 동안 가족들도 거친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마드리드에서의 삶은 나름 만족스러웠지만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독립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냥 그렇게라면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여기저기 뿌려놓은 몇백 개의 포트폴리오를 위해 마지막으로 연말까지만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 사이 무언가 드라마틱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보다 그냥 미련이었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벌써 마음의 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한국에서 돌아온 뒤 페르난도와 크리스티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사정이 이래이래 하니 연말 이후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무언가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에 대해 나도 많이 고민을 하고 둘도 기꺼이 여기저기 알아봐 주었지만 당시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렇게 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해가 짧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