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미로'의 마요르카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나는 마요르까(Mallorca)의 존재를 그곳에 위치한 미술관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유럽인들의 휴가 취향, 날씨니 문화적 배경 같은 복합적인 이유들 외에 간단히 그곳에 있는 미술관을 가보기 위해 알게 된 것이다.

Mirador Parc de la Mar, + Catedral de Mallorca, Spain / ©HK Shin

마요르까는 섬이라기엔 생각보다 크다. 바닷가를 접하고 있는 다양한 방식에 따라 각 지역의 색깔도 다양하다. 그 와중에 아랍문화의 흔적과 로마인들의 흔적까지 가지고 있으니 마요르까에 가기 전 알아봐야 할 내용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다른 때와 다르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휴양지이니 여행 시기나 여행 경비 등을 최대한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나는 결국 마요르까의 ‘팔마’ 지역의 외곽에 묵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의 목적지인 미술관에 가기에 용이한 곳으로, 시내에서 좀 멀어도 상관없었다.


후안 미로 (Joan Miró) 까딸루냐 출신의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그림부터 조각, 공예까지 두루두루 재능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살바도르 달리보다 색채나 소재 등이 더 밝고 경쾌한 듯한 느낌이 든다. 바르셀로나 공항부터 도심 중앙의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그의 작품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미로의 작품들은 색감이나 형태 등이 워낙 눈에 뜨이는 편이라 누군지는 몰라도 적어도 '아 같은 사람이 작업했는가 보다'정도는 바로 알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후안 미로 미술관 Fundació Joan Miró, Barcelona / ©HK Shin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미로 미술관은 위치도 근사하게 몬주익 언덕에 있다. 이 미술관은 미로와 30여 년 친구지기 이기도 했던 건축가 호세 세르뜨(Josep Lluís Sert, 까딸란으로는 조셉 유이스 쎄르뜨)의 작업으로 그는 건축 작업뿐만 아니라 가구 및 조명 등 지금도 인기 많은 소품으로도 유명하다.


마요르까에는 후안 미로가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작업실과 그의 사후에 지어진 미술관이 있다. 마요르까의 작업실 역시 호세 세르뜨의 작업이다. 후안 미로 재단의 홈체이지(https://miromallorca.com/)에는 '건축도 하나의 조각이 될 수 있다'라는 말과 함께 기러기 스케치도 올라와 있다. 더불어 각 건물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 등도 있는데 각각의 건물이 당대 꽤나 유명한 사람들의 작업이라 그런지 이름을 넣어서 표기한다. '세르뜨 작업실', '모네오 건물' 등으로 말이다.

건축가의 이름을 딴 '세르뜨 작업실' Taller Sert, Barcelona / ©HK Shin

바로 앞에 위치한 '모네오 건물'은 세르뜨와 작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 건물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의 대표작 중에 하나로 정말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사실 이 섬이 휴양지로 유명하고 아프리카에 가까워 1년 내내 날씨가 좋다는 것 등은 방문 도중에, 혹은 다녀온 지 한참 뒤에 알았다. 그만큼 마요르까에 가는 이유는 정확하고 간결했다. 이 건물을 보고 싶어서였다.

Fundació Pilar i Joan Miró a Mallorca / ©HK Shin

한 참 전에 예약한 비행기 날짜를 기다리며 자료를 뒤져보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며 열심히 예습했다. 그리곤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질문만 남겨놓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건물을 보러 갔으니 한두 시간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멍을 때리고 다시 멍을 때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내가 가져온 중요한 질문 몇 가지가 아주 명쾌하게 답변이 되면 기분 좋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게 답사가 끝난다. 문제는 나의 예상 질문이 보기 좋게 벗어날 때다. 도면으로나 사진으로나 너무 완벽해 보이는 건축적 기교가 실제로 보니 조악해 보인다던가 말이다.

그러나 이 건물은 내가 가져간 예습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줬다. 물에 반사된 햇빛이 벽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그리는 모습은 상상도 못 했거니와 본 적도 없었다. 멋들어진 평면에 아무런 단열재가 없는 것은 날씨를 겪어보니 이해가 됐다.

주 출입구. 사진의 왼편에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 ©HK Shin

건물이 위치한 대지는 급한 경사를 끼고 있다. 입구는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하고, 이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미술관이 지어지기 전 사용하던 '세르뜨 작업실'이, 왼쪽으로 이 미술관이 내리막 경사를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미술관의 입구가 높은 경사를 내려다보는 멋진 경관을 독점하게 됐다. 이곳에 물을 조그마하게 담아놨는데 이 물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햇빛은 심지어 영롱하다. 단순히 입구를 밝히는 역할뿐만 아니라 나중에 펼쳐질 미술관 공간을 미리 보여주는 복선의 역할도 한다. 입구에서 출발해 내부를 모두 둘러보고 야외로 다시 나오면 미술관의 정면에 해당하는 야외 전시장으로 연결된다. 입구에서는 한 층 아래로 내려온 셈이다. 아하, 아까 입구에서 봤던 물은 미술관의 천정에 고인 물이었다. 그래서 건물 외벽의 지붕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조금 더 지저분한가 보다. 솔솔 부는 바람에 물이 가끔 벽을 적시기도 할 테니.

외부 벽에 다시 한번 미로의 작품 / ©HK Shin
벽에 일렁이는 햇빛 / ©HK Shin

내부 전시실.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볼 때는 정적으로 느껴진다. 무언가 평화롭고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건물 주변을 둘러싼 작은 호수에 반사된 햇빛이 내부로 다양하게 굴절되며 벽에 그리는 그림자는 벽에 걸린 미술작품보다 훌륭하다!



Centro BIT, Inca, Illes Balears, Spain / Alberto Campo Baeza / 1995~1998

팔마에서 기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잉카(Inca)라는 지역에 위치한, 알베르또 깜뽀 바에싸(Alberto Campo Baeza)가 작업한 '연구실'이다. 생각보다 일정에 시간이 남아서 뒤지다 보니 찾은 건물로, 이 지역은 연구 목적의 건물들이 가득한 연구 단지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알베르또 깜뽀 바에싸는 마드리드 출신의 건축가로 편집증에 걸린 듯한 그의 건축 작업으로도 유명하지만 강의, 강연 등의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작업들은 자로 잰 듯이 딱딱 떨어지는 기하학의 향연으로 유명하다. 전체 건물의 외곽 테두리부터 각 내부 공간의 모양, 바닥재의 줄눈은 물론 나무가 심어지는 간격 등. 실제 그의 디테일 도면을 보면 심지어 치수마저 정수로 딱딱 떨어진다. 상당히 피곤한 노력의 결과물들은 현장에서 사람을 압도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종종 오렌지 나무나 레몬 나무 등을 눈에 보이는 곳에 심어 긴장감이 넘치는 것을 말랑말랑 하게 상쇄해 준다. 물론, 오와 열을 맞춰서!



keyword
이전 08화그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