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어린 격려와 응원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사람의 따뜻함은 '사람의 본성이나 원래 성격'일까 아님 그 사람이 속해있는 '환경'일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 환경이 바뀌면 '원래 따뜻했지만 일시적으로 날카로워진 사람'은 다시 따뜻해지는 것일까. 아님 사람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


2008년 12월을 앞둔 어느 날 취리히(Zürich)에 사는 선배 K에게 연락이 왔다. 스위스 건축을 배우겠다고 2006년에 한국을 떠난 그는 먼저 독일에서 어학을 하고 취리히로 넘어가 현지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유명 건축가가 강연을 온다는 얘기에 그 구경도 할 겸, 선배랑 오랜만에 만나서 놀 겸, 스위스 구경도 할 겸, 정말이지 그 짧은 시간에 무지하게 많은 기대를 안고 취리히로 향했다.


오랜만에 선배 K와 반가운 얼굴도 보고 한국말로 떠들며 긴장을 풀었다. 학교 다닐 때는 그와 친분이 그렇게 깊지 않았으나 타지에서 만나는 반가움과 한국을 떠나온 이들의 묘한 동질감 등으로 인해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겪고 있었던 시간을 먼저 지나 현지 생활에 많이 정착한 듯 보였다. 추운 겨울을 지나는 모습도, 트램의 시간표를 보는 것도, 먹는 것도, 그리고 그 사이의 여유를 즐기는 방법도. 종종 들르는 나 같은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능숙했다.

Schipfe, Zürich, Switzerland / ©HK Shin

몇 개월 동안 벙어리로 지낸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다.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잠시라도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것인지 자세하게 기억 못 할 정도로 과음을 했다. 오랜만에 마음을 편하게 먹고,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너무 좋았다. 거창하게 앞으로의 건축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 선배와 당시에는 아주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모든 것이 굉장히 편하게 느껴졌다. 내가 당시에 그 선배였으면 좀 부담스러웠을 것 같은데 그는 내색이 없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마드리드의 Y선배와 더불어 취리히의 K선배는 비슷한 시기에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다. 그 둘 모두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시행착오를 스스로 지나며 자신만의 '개척로'를 만들어간 사람들이다. 내가 마드리드로 간다고 하자 둘은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해줬다.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며 미리 부족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귀띔해주기도 하고 잘하고 있다는 말들을 건네주곤 했다. 자신들이 고민했던, 고민하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먼저 이야기해주는 것은 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이곳에 살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통해 두 선배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지도 않고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슬픈 일이다. 특히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받은 나는, 타인에게 더 따뜻했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줄곧 내 주변의 스트레스를 예상하기에 스스로 너무 미숙했다. 말, 음식, 사람, 날씨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 몸이 기억하는 일상의 흔적과 다른 모든 것은 나에겐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그냥 계속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한 번은 마드리드에서 당시 나와 비슷하게 현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건축가 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두 분 모두 서울에서 설계사무실에 다니며 한창 경력을 쌓고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던 분이었는데, 그분들도 스페인이 건축이 좋다고, 좀 가까이서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고 오신 분들이었다. 아마 마드리드 공대를 왔다 갔다 하며 건너 건너 알게 됐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생각보다 높은 취업의 '문턱'에 한창 좌절하고 있을 때였다. 첫 번째로 언어가 생각만큼 쭉쭉 늘지 않았고(물론, 급한 마음은 항상 시간보다 몇 년씩은 앞서가는 것 같다.) 두 번째로 그들의 표현방식과 다른 나의 포트폴리오를 다듬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세 번째로는 이게 정확히 시간이 얼마나 앞으로 걸릴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정리한 이 세 가지 이유 외에도 예민할 이유는 넘쳐났고 그런 마음에서 다른 이에게 고운 말이 나갈 리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날카로운 말들을 뱉어냈고 예상대로 그 뒤로 그분들을 만난 적은 없었다. 나 같아도 다시 보기 싫었을 것이다.

또 한 번은 대학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그도 마드리드의 사무실을 알아보고 싶다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등에 대해 물어왔다. 당시 그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다. 그런 그에게도 내가 받은 '진심 어린 격려와 응원'은 건네주지 못했다.


어느 순간 문득, 내가 따뜻한 사람에게 받은 격려와 응원을 뻔뻔하게 독설로 바꾸는 번역기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느꼈으면 변화를 시도해야 할 텐데 한없이 핑곗거리만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녔다.

주변의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항상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내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쥐구멍에 숨고 싶은 이야기들 말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내 주변에 많아질까.


Schutzbauten für Ausgrabung römischer Funde, Chur, Switzerland/Peter Zumthor / 1986 / ©HK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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