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와 등부표들이 한반도에 차례로 나타나고, 그것들이 자유자재로 왕복 여행을 반복하게 된 이후로 세상 사람들은 놀랄 만큼 놀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묘한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단 정해진 수대로 모인 등대들이 한국 안에서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어 가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서로 충돌할 만큼 가까워졌다가 사라질 때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증발할 때도 있었다.
일상이 지루했던 사람들에게 이 사건은 누릴 거리가 많은 한 편의 블록버스터였고, 외교와 국가방위 관계자들에게는 도무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성가신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물에 가장자리가 있고, 모든 대륙에 해안이 있듯이 세상의 이목을 끄는 일에도 변두리가 존재했다. 부득이하게 뉴스를 접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나 의식적으로 뉴스와 담을 쌓은 사람들이 바로 그 변두리에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그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호산의 경우가 그랬다. 이 청년은 사건의 중심지인 한국에 살았으며, 심지어 등대와 밀접한 해양수산청의 항로 표지과 팀원이었으나 이번 사건으로부터의 의식적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쯤 되었다. 그의 생각은 언제나 보다 근본적이며 가까운 일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모든 신경을 눈 앞의 일과 사람에 집중하여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인 그가 유일하게 귀를 기울이는 뉴스가 있다면 그것은 일기예보뿐이었다. 집중을 분산시키는 다른 소란들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일기예보가 나올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TV를 틀었고 예보가 끝나면 전원을 껐다.
언제나 이맘때면 떠오르는 태풍에 대한 예고는 그보다 충격적인 사태로 인하여 완전히 인기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호산은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있을 선미도 등대의 점검 때문이었다. 항로 표지과는 바다와 관련된 많은 일들을 처리하는데, 등대가 제 기능을 다 하는지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일 역시 그중 하나였다.
등대의 빛이 변함없이 유지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관측팀은 이미 오래전 편성되었다. 광원반이 등대에 올라 기준이 될 빛과 등명기의 빛을 번갈아 쏘아 전달하면 광측반이 8마일가량 떨어진 바다 위에서 그 빛을 측정 장비로 비교 분석한다. 호산은 광원반의 일원으로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 등탑 꼭대기를 올라야 했지만 선미도의 등대보다 훨씬 높은 등대를 오르는 동료들도 많았기에 함부로 불평할 수가 없었다. 예측 불가능한 저녁의 조류 위에서 측정을 해야 하는 팀원들이 어찌 보면 더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렇기에 등대의 꼭대기에 오를 광원반과 바다 위에서 빛을 기다려야 하는 광측반 모두에게 바다의 컨디션은 무척 중요했다.
괌에서 발생한 태풍 ‘도미노’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었고, 그 사실은 호산을 예민하게 했다. 앞서 거쳐간 두 차례의 태풍들로 인해 일정이 누차 연기되었기에 다시 미루는 일은 모든 관계자를 피곤하게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광측선의 일정은 전국의 바다 행정과 연관되어 있어 잦은 변경은 모든 지부의 일정에 큰 지장을 줄 수도 있었다.
호산은 연안부두에 정박해있는 광측선 한빛호를 찾았다. 다른 팀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오랜만에 만난 선장과 담소를 나누었다. 긴장을 덜기 위한 그만의 관례였다. 오후 3시쯤 되어 전원이 도착했고 그들은 선실에 집결하여 일정과 장비, 대기할 방위 등을 체크한 뒤 선미도로 출발했다. 섬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두 시간은 그들에게 자유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오가는 대화의 주제는 대체로 다양하면서도 일상적이었는데, 이 날은 기이한 등대의 등장이라는 토픽 하나로 시간이 훌쩍 흘러 어느덧 중간 지점인 자월도를 지나고 있었다. 호산은 이 시점에서 온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들을 수도 있었지만 마침 갑판에 나가 날씨의 변화를 살피느라 끝내 전해 듣지 못했다. 광원반이 되어 함께 등대에 오를 입사 동기 원준이 호산에게 다가와 믹스커피를 내밀었다. 그는 호산이 염려하는 바를 알아채고는 말했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 마. 일 마치고 보리굴비 회동! 잊지 않았지?”
호산은 보일 듯 말 듯 웃으며 믹스 가루가 잘 섞였는지 확인하려는 듯 괜히 잔을 흔들었다. 얼마 후 덕적도의 해무 뒤에 숨어있던 물고기 모양의 섬 선미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미도의 등대는 한국에서 제일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었으며, 등명기 또한 신식으로 여러 면에서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호산이 아는 한 모든 섬은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선미도는 서해안의 여느 섬 중에서도 그가 이 일을 시작하게 해 준 이유를 또렷이 상기시켜주는 섬이었다. 과하지도 단조롭지도 않은 풍경이 바로 그 이유였다.
섬 소유주의 아버지가 심었다던 밤나무에서 초록빛 밤 열매가 무르익어 가는 모습을 호산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무수한 칡 나무의 구불구불한 줄기들, 고사리로 덮인 야트막한 언덕들, 마른 들풀과 방금 피어난 야생초가 뒤엉킨 풍경들은 언제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방목된 사슴들이 사람의 기척에 달아는 소리, 갈매기 떼의 울음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업무와 무관하게 홀로 찾아와 구석구석을 섬을 누벼보는 것이 꿈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다. 30킬로그램에 달하는 장비 탓에 언제나 모노레일을 타고 낭만 없이 정상에 올라야 했던 것이다.
언덕 정상에 자리한 사무실 입구에는 등대관리원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서글서글한 관리원은 삼촌처럼 섬과 등대를 찾는 손님 모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원준과 호산은 관리원의 기록을 보면서 등대의 상태에 관해 짧게 얘기를 나눈 뒤 지체 없이 회전식 계단을 올랐다.
에어컨을 가동하여 바깥보다 선선한 실내였지만, 짐의 무게 탓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호산은 바람과 파도의 조건이 나빠지기 전에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일념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번에 등롱에 올랐다. 그는 장비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등대의 씨앗인 등명기로 다가갔다. 겹겹의 프레넬 렌즈가 섬세하게 포개어져 작은 불빛을 수십 킬로미터 밖까지 반사하는 이 신비로운 사물을 혹자는 아름다운 보석에, 그중에서도 다이아몬드에 빗대곤 했다. 그러나 호산은 그보다는 솔방울이나 복숭아 씨앗과 더욱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화려한 인공물 대신 조그마한 자연물에 줄곧 경외심를 느껴왔으며, 등명기는 언제 보아도 사람의 발명품보다는 신의 선물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19세기의 프로메테우스인 프레넬이 남긴 선물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등명기 중심에서 돌연 엄청난 빛을 뿜어져 나왔다. 그는 눈을 두 손으로 황급히 가리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관리원의 이름을 외쳐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원준을 불렀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점점 더 강해지는 빛은 물리력을 가진 듯 호산의 몸을 밀치고 짓눌렀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발코니의 통유리 몇 장이 폭발하듯 깨져 나갔다. 호산은 극심한 현기증과 두려움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