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동해 온 등대들이 전부 무인등대이거나 이미 오래전 문화재로 지정된 터라 현지인이 딸려 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등대를 옮긴 미지의 존재가 나름 분별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으나, 순전히 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영국의 한 강아지로 인해서 밝혀졌다.
아담한 크기 때문에 강아지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요크셔테리어라 요크셔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 개는 인간으로 치자면 환갑에 가까운 노견이었다. 영국 남해에 면한 작은 항구도시의 등대지기인 이작 해머가 그의 반려인이었다. 그는 솔즈베리와 화이트 섬 사이 단조로운 도시의 끝자락에 위치한 허스트 포인트 등대를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흙빛의 다소 황량하고 밋밋한 해안가에 위치한 이 백색의 등대는 한낮에도 마치 하얀 점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덕분에 배들은 등명기에 채 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멀리서 보이는 이 등대를 지표로 길을 찾아오고는 했다.
이작 못지않게 요크셔도 중요한 책무를 맡고 있었다. 바로 주인의 일터를 주인보다 먼저 체크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작이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총알처럼 등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때문에 ‘이리 와 요크셔!’는 아침마다 인근 주민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되었다. 이어지는 ‘닥쳐, 이작!’하는 소리도 그 요란한 알람의 일부였으나 사람들 귀에는 그저 개가 짖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등대로 질주하는 조그마한 개의 모습은 풍차를 향해 달리는 돈키호테를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천인공노할 세상의 작태에 분노하여 기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던 돈키호테와는 달리 요크셔는 문자를 읽을 줄 몰랐다. 따라서 등대 입구에 새로 붙은 경고문도 읽지 못했다.
‘금일부터 정부의 지침에 따라 영국령 모든 등대의 입장을 엄격히 금지하오니 적극 협조 부탁드립니다.’
요크셔는 낯선 경고문판에 코를 대고 킁킁 대다가 가뿐하게 지나쳐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그리고 백여 개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 등롱을 점검했다. 주인을 위협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풀린 데다 달음박질로 급격히 체력을 잃은 요크셔는 등롱에서 발코니로 연결되는 입구에서 누워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주인이 한참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아 노견은 방해받지 않고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그는 묘한 꿈을 꾸고 난 다음 개운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그리고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여태껏 얼굴을 보이지 않는 주인을 찾으러 집으로 돌아갔다. 막 오십줄에 접어들었다고 이작이 이렇게 태만해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물이 글썽한 주인이 자신을 격하게 반기며 따듯한 우유와 살코기를 내오자 혼내기로 한 것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배가 부른 요크셔는 기분이 좋아져 고양이처럼 가르랑거리며 보드라운 쿠션 위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애착 인형을 껴안은 채 나른한 기분에 잠겨 꿈 이야기를 꺼냈다.
“이작, 글쎄, 내가 말이야, 모처럼 꿈을 꿨는데, 높다란 빌딩들이 보이지 뭐야. 그 건물들은 근사한 소나무에 덮인 바위산으로 둘러 싸여 있었지. 그곳 사람들의 머리칼은 대체로 어두운 색이었고 눈동자도 비슷한 색이었던 것 같아. 알다시피 나는 부분적 색맹이라 명도의 차이 밖에는 얘기해 줄 수가 없잖아? 여하튼 그들은 내게로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유명인에게 하듯이 카메라 셔터를 터뜨려댔어. 펑! 펑! 아. 정말이지 이런 근사한 꿈은 난생처음이야!”
물론 이작은 요크셔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요크셔가 인간의 글을 모르듯 이작 또한 개의 언어를 알지 못했으므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듯이 요크셔가 잠들어 있는 동안 허스트 포인트 등대는 한국의 도시 한복판에 가있었다. 고층 건물에서 등롱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몇 사람들은 발코니 뒤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동물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카메라에 담았다. 줌을 당겨 보니 눈을 반쯤 치켜뜬 채 꼼지락 거리는 앙증맞은 요크셔테리어가 보였다. 그 치욕스러운 사진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엄청난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요크셔가 알았다면 아마도 걸은 입으로 이렇게 쏘아붙였을 것이다.
"남의 사진을 함부로 올린 망나니가 대체 누구야! 당장 내리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