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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Jul 21. 2023

공무원이라 자를 수도 없고

회사 후배 직원과의 관계 맺기가 어렵다.

직원 인사 시즌이다. 다음주에 새로운 직원들이 온다.

그러다보니 재작년 함께 일하는 직원으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떠올랐다.

검사실에서 실무관은 검사가 기록을 검토하면 기록을 만들고, 시스템에 입력을 하는 사람이다.

그 실무관은 내가 생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참 공격적이다.

그리고 참 엉덩이가 무겁다.

결재권자이자 상급자인 나에게 자기 자리로 와서 기록을 가져가라, 결재를 해라,라고 하는 것은 일상이고,

'이건 검사님이 하셔야죠'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럼 나는 다시 '실무관님이 해주세요'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니 지쳐갔다.


처음엔 나보고 잘 구슬려 보라던 부장님은 한 시간씩 나를 불러서 그녀에 대한 하소연을 했다.

심지어 그녀의 근무태만이 쏘아올린 공이 부장님의 감찰 지시로까지 이어진 상황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 연계 프로그램으로 저명한 정신분석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었고, 선생님은 영화 misery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은 전형적인 인격장애라고 해석했다.

어릴 적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자기 뜻대로 주변이 흘러가지 못한 것에 대한 화가 컨트롤이 되지 않아, 몸은 어른이나 마음은 3~4살 어린아이에 머무른. 그런 사람.

아이들이 맘에 들지 않으면 떼를 쓰고 화를 내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녀의 세상과 내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같이 진흙구덩이에서 구를 것인가?

아니면, 어른의 마음으로 인내하고 받아줄 것인가?



우리는 때로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내 인생의 최악의 사람이라고 부를만한 인간들.

돌이켜 보면 그런 사람들은 내 스승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세상을 힘의 논리로 바라보면 부딪히게 되어 있다.

투쟁, 복수, 경쟁, 눈치, 다툼에서,

사랑, 양보, 배려, 용서, 사과로 향해 가고 싶었다.

나는 화가 날 때마다 앞에 있는 사람의 행복을 빌었다.


화병이 쌓이는 게 보였는지 남자친구가 통화를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다.

예전에 남자 친구가 회사 상사로 힘들어할 때 내가 했던 방법인데 그대로 해줘서 고마웠다.

첨에는 용기가 안 나고 말하기가 싫었는데 말을 하다 보니 봇물 터지듯 술술 나왔다.

나는 새벽에 벌떡 일어나 해야 할 말들을 글로 적었다.


그리고는 용기가 생겼고, 그녀와 나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 떠올랐다.


다음날 나는 그녀와 면담을 했다.

먼저 그녀의 노고를 치하했다. 검사실의 사람 하나하나가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무사히 돌아가니까.

그리고, 솔직한 마음을 담아 내 느낌을 전달했다.

아니나 다를까 또 다시 화를 통제하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나는 침착하게 모든 말을 들어주고는 물었다.

" 어떻게 하면 좀 더 서로 친절하게 기분 상하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자, 다소 감정이 격앙되던 그녀도, 효율적인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합의점을 찾았고,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일 년 동안 원만하게 일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 싫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감정들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때의 나는 참 용기 있었다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말하고, 건강하게 듣기.

그리고 지금의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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