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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Sep 06. 2020

도움 개방형 인간이 되고 싶어

저 좀 도와주세요. 저도 그럴게요.


혼자서도 잘하네


홀로 서기 10년째, 나는 대체로 모든 것을 나 혼자 해결하고 또 중간 이상으로 해내는 다이소 같은 사람이 되었다. 물론 회사는 제외하고 일상생활에 한정된 이야기다. (그럴리는 없지만 직장 동료가 보면 분노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엔 굳이 각자의 삶을 가진 사람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2명 이상 모여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잘 없다. 밥 먹기? 우리는 음식물 입에 넣고 말하지 말라는 밥상머리 예절을 어릴 적부터 받아왔다. 사회적 관계 유지를 위해 가끔은 몰라도 매일 하는 식사는 당연히 혼자가 편할 것이다. 영화 보기? 예술은 집중해서 빠져들고 사유해야 그 맛이 있다고들 하던데, 그러기 위해선 옆자리에 "방금 뭐래? 쟤가 범인이래?"라는 물음을 속삭이는 동행은 없는 것이 반드시 좋을 것이다. 쇼핑 하기? 확고한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에 타인의 입김은 개성을 흩트릴 뿐이다. 그러니 내가 주말 오후 6시에 곰장어집에서 프레시한 소주 한 병에 소금구이 2인분을 시켜 먹는 것이나, 전시회의 포토존 앞에서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를 꾸며 내어 "저, 사진 좀..." 하고 휴대폰을 내민 뒤 결국에는 꼬은 것도 편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다리 모양과 짓다 만 미소가 담긴 기념사진만 건지거나 하는 게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그렇게 살지 않을까?




살고 있는 집의 계약 문제가 있어 이사 갈 곳을 둘러봐야 했다. 문제까지는 아니고, 집주인이 바뀌면서 계약 만료일보다 이르게 이사해줄 것을 요청했고 나도 고즈넉한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 서로 니즈가 맞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빨빨거리며 동네 산책을 하는 게 즐거움 중의 하나라 산책 중 눈여겨봤던 건물을 마음속 1순위로 찜하고 중개소에 연락을 넣어 집 볼 날짜를 잡았다. 지난 10년 동안 6번의 이사를 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번에도 혼자 돌아다니려 했다. 처음에는. 그러다 문득 '입씨름은 귀찮으니 적당히 괜찮은 곳을 알아봐야지.'하고 무심결에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곧 서른을 목전에 앞두고 어떤 새로운 나날이 펼쳐질지 모르는 시점에 왜 적당히 괜찮을 곳을 알아봐야 하지? 그래서 나는 H에게 연락했다.


H, 그녀는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친구 중 단연 환불 원정대와 가장 부합하는 아우라를 갖췄다. 세련된 차림새에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핵심을 파고드는 화법까지. 그녀에게 연락 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빠른 결단력을 갖췄으나 그에 반비례하는 순간 판단력을 지닌 나를 워워하며 붙잡아 줄 사람으로 적격이었다. 나는 종종 한 가지에 꽂혀 원래 계획했던 100가지는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저질러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북한산 뷰(view) 하나만 보고 폭풍 노후화된 설비는 체크하지 않아 집주인과 다소 난해한 상황에 많이 부딪혔던 것처럼 말이다. H는 직장인에게 황금 같은 주말 하루를 온전히 나의 새로운 터를 위해 비워줬고, 그래서 우리는 토요일 한낮에 만나 해가 저물 때까지 여섯 시간을 집 보러 다녔다.


다행히 마음속 1순위의 건물에 원하는 조건에 맞는 매물이 있었고, 내 판단이 섣부르지 않다고 냉정하게 평가한 H가 있어 순조롭게 계약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본인의 집에서 1시간이나 걸리는 이 동네로 와서 돌아다니느라 수고한 H에게 우리 동네에서 엄지 척할 정도로 맛있는 고기를 사주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갓 문을 연 식당의 마수걸이로 들어가 앉고 고기 불판이 얹어졌는데 이상하게 연기가 자꾸만 H 쪽으로 갔다. H가 자리를 바꿔 앉아 공교롭게도 고기 굽는 자가 컨트롤해야 할 불 조절기가 그녀의 앞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진해서 '오늘 고기는 다 내가 구워버릴 테니 너는 먹기만 해'라고 선언한 고기 굽는 자(=나)는 일어서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불판 너머로 손을 뻗어야 조절기를 만질 수 있었다.


일단, 열심히 맛있게 잘 구웠다. 고기는 나름 나쁘지 않게 노릇노릇 굽고, 김치도 기름에 자글자글 튀기듯 익히는 걸 잘하니까 둘 다 만족하는 맛이었다. 다만, 많은 대화를 나누느라 고기 양이 쉽게 줄지 않아 불을 올렸다 줄였다 하는 것 빼고는. 그저 H에게 "불 좀 꺼줘"라고 하면 되는 일인데 그 생각은 못하고 집게와 가위를 들었다 내렸다 불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그 순간 문득, '아, 이래서 내가 지금껏 혼자 했었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도움받으면 빚이 생긴다. 마음에. 이걸 어찌 갚아야 하나 싶은 그런 빚이. H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부탁을 들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좋은 집을 발견한 오늘의 행운은 모두 그녀의 덕이고, 심지어 이! 먼 곳까지! 소중한 주말에! 나를 챙기러 와 줬다는 사실이 엄청난 감동인 것이다. H에게 당장 고마움을 행동이든 물질이든 표현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울 뻔했고, 그래서 나는 식사를 대접하러 온 건데 그녀가 손에 집게라도 들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러니 불 조절기도 그녀가 하지 않았음 하는 마음이었던 듯하다. 나는 대체로 1의 도움을 받으면 (물론 모든 도움은 소중하고 감사했고 도움의 크기를 따지는 건 아니다) 10을 줘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 그 사람이 나한테 A를 해줬지. (1년 뒤) 그래, 그 사람이 나한테 A를 해줬지. (n 년 뒤) 그래, 그 사람이 나한데... 뭐, 이런.


이런 나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서 도움받는 건 최대한 피하려 했다. 도움을 받아 어떻게 돌려줘야 하지 전전긍긍 마음 쓰는 것보단, 기대에 좀 덜 차더라도 혼자 해버리면 편한 것이다. 생각보다 혼자 해서 안 될 일은 살면서 그리 많지 않고, 해보면 또 중간 이상은 된다. 워낙 혼자 살기 좋은 세상이라 능숙해지면 같이 하는 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고 말이다.


마음에 과한 부채를 지는 게 무슨무슨 심리학적 현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지만, 타인의 호의를 부풀려 받아들여 자신의 마음에 영향을 받는 건 심리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글을 어느 책에선가 봤던 것 같다. (출처 미상)

 



혼자서도 잘하는 거, 편하고 좋지만 가끔은 외롭다. 스쳐 지나가는 외로움이라면 괜찮겠지만, 훅 들어오는 그런 외로움은 뭐든 혼자서 하다 보니 정말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언제든 내가 도움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살다 버릇 하니 어떻게 도움을 구하는 지도 잊어버린다. 이번, H에게 연락을 한 것도 나에겐 나름의 도전이었다. 내게 손 뻗으면 응당 잡아줄 이들이 도처에 있다. 도움을 받으면 어떻게든 바리바리 감사를 싸들고 다니며 퍼주지 않아도, 후에 그들이 나에게 도움을 구하면 당연하다는 듯 도와주면 된다. 머리로는 아는 걸 마음과 행동이 따라주지 못해서, 나를 도움 개방형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도전을 한 것이다.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인 요즘, 혼자서도 잘하는 나는 일상이 편하다. 그러나 가끔, '적당히 괜찮은 걸로' 퉁쳐버리는 혼자 하기에 질려버려 적당하지 않은, 최상급의 무언가를 먹고 즐기고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건 혼자서는 되지 않으니까.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파트너가 없다면 적당히 좋을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은 어렵더라. 하루 종일 돌아다녀 피곤한 와중에도 오늘 도움 개방형 인간이 되는 데 실패하여 착잡하지만, 일단은 한 걸음 다가간 것으로 하자. 다가오는 서른에는 혼자 보다는 돕고 돕는 게 더 편한 사람이 되기를.



Photo by Matt Collarmer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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