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습관과 새해 목표
난 정말 옷을 못 입었다. 애초에 어렸을 땐 그냥 몸을 가리기 위해 존재하는 사물 그 이상 이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 자신의 몸과 외모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데 난 아니었다. 뚱뚱한 체격 때문에 항상 부모님은 검은색 위주로 옷을 사 오셨고 옆에서 나 대신 골라주기도 하셨다. 신발은 아버지가 항상 동네 나이키 매장에 가 기능성, 디자인, 최대한 오래 신을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사셨다. 물론 나랑 항상 같이 가셨는데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아닌 아버지가 원하는 신발을 내게 사주신 셈이다. 그렇게 옷에 대해 아무런 감각 없이 살다 고등학생 때부터 슬슬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그때 한창 해외직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였고 세상은 넓고 옷에 종류는 많았으며 내 용돈은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관세와 환율을 항상 확인하고 구매했다. 해외에서 택배 배송은 적게는 5일 길게는 2주 정도 걸린다. 내 택배가 미국 배대지에서 배송을 시작하면 설레기 시작한다. 이 제품이 빨리 한국으로 날아왔으면 하는 생각에 밤잠 설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설렘이 다 가실쯤 한국에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으면 다시 시작되는 설렘과 이 제품을 받고 행복해하는 날 상상하게 되는 기쁨, 이래서 쇼핑 중독에 빠지는 건가 싶었다.
항상 해외직구가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닥터마틴 4홀 신발을 사게 됐었는데 분명 정확히 9.5us사이즈를 샀다고 생각했지만 배송 온건 10us였다. 양발 한 5겹은 신어야 덜컹거리지 않을 만큼 신발 사이즈가 엄청 컸다. 도저히 신을 수 없을 지경. 결국 생애 처음으로 중고거래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엔 친구들한테 권유를 해봤지만 싫다 하니 어쩔 수 있나 인터넷에 올렸다. 국내 가격보다 해외 가격이 훨씬 저렴해서 중고 가격도 새 제품이지만 더욱 저렴하게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팔렸다. 구매하시는 분은 대학생처럼 보였고 키가 190cm은 넘어 보였다. 인생 살면서 내 제품을 누군가에게 팔아보는 경험은 은근 창피했다. 신논현역 안에서 거래를 했었는데 신논현역에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들은 중고 거래할 때 왜 이리 쳐다보는 건가 싶었다. 하필 파는 제품이 신발인지라 자신의 발 사이즈에 맞는지 확인을 해보겠다며 신발 한쪽을 꺼내 신어 봤다. 그 정신없는 사람들 속 사이에서 꾸역꾸역 신발을 신는 구매자 분과 그걸 창피해하면서 지켜보는 나(워낙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고 모든 사람들이 날 바라보는 기분이 들어 더욱 창피해했다.)는 의식이 아득해져 갔다. 구매자분은 만족한 표정으로 돈을 송금하셨고 처음으로 생판 모르는 분의 계좌로부터 내 계좌에 돈이 들어온 날이기도 했다. 돈이 들어오니 신기했다. 내가 만든 신발을 판 건 아니지만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돈이 계좌에 들어오니 신기하고 한편으론 신났다. 그밖에도 나랑 좀 안 맞는다 싶은 제품들은 죄다 인터넷에 올려 팔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츰 내가 원하는 모습과 나랑 맞는 옷이 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20대가 되어 내가 원하는 옷들만 쏙쏙 고를 줄 알았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몸집이 크고 키가 작아 웬만한 기성품 옷들은 걸러야 했고 빅사이즈를 찾아 인터넷을 헤맸다. 아무래도 큰 사이즈 옷들은 내가 원하는 옷들이 없었다. 최대한 협의해서 산 옷들도 처음엔 합리화하며 잘 입을 수 있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아니었다. 지금은 처다도 안 볼 그래픽이 그러진 티셔츠와 항상 검은색 통 넓은 바지, 신발은 흰색 운동화만 신고 다녔다. 계절이 바뀌면 그 위에 맨투맨, 패딩만 추가하는 정도였다. 정말 내 인생의 패션 암흑기였다. 그러다 24살, 유튜브에 패션 유튜브와 다이어트로 내 나이대에 맞는 옷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과소비는 줄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옷과 원하는 모습이 되는 그 기분이 짜릿해 쇼핑을 멈출 수 없었다. 유튜버들은 왜 그렇게 돈이 많고 예쁜 것만 사는지 그 사람들이 소개해주는 브랜드, 옷 스타일을 보면 항상 뭘 결제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게다가 신발에 관심이 많아져 한정판부터 평범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까지 여러 개를 구매했다. 내 방 한쪽엔 신발 상자로 반을 채울 수 있을 만큼 신발이 많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지도 않을 신발, 유행에 휩쓸려 가격만 오른 신발, 나한테 맞지도 않는 신발 등등 사지도 않아도 될 신발들도 꽤 많았다. 아무래도 신발을 많이 샀던 이유는 마음이 텅 비어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이 신발이 날 한 단계 올려줄 거라 믿고 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자존감이 낮아서 그랬다. 허름한 신발을 신어도 그 신발에 멋을 더하는 건 나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멋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행히도 나한테 맞는 옷을 알고 쇼핑을 실패하는 일은 줄었지만 아직까지 과소비를 유지하고 있다. 세일이라는 이유로 저번에 사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랑 잘 맞을 거 같다는 이유로 별별 이유를 갖다 대면서 사고 있다. 2022년엔 조금 더 현명하고 지금 갖고 있는 옷들을 더 자주 바라봐야겠다.
지금 장바구니가 가득하다면 한 번 훑어보기 바란다. 정말 내가 필요한 건지, 비슷한 제품이 분명 집에 있는데도 또 구매하려는 건 아닌지. 정말 필요하더라도 최대한 미루는 걸 추천한다. 그리곤 집에 있는 소중한 옷, 신발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자. 이게 내 22년 새해 목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