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영국 콘월편-1)
여기서 잠깐! 기왕 성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키프로스에 가기 전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생겼다. 바로 영국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도 나오지만, 성배는 십자군 전쟁 시절 3명의 기사가 발견했다고 전한다. 나치가 입수한 문서에는 그 3명이 프랑스 남부 카타리파 기사라고 했지만, 문서 속 기록은 물론 문서 자체의 진위조차 확인된 바 없다. 대신, 성배를 발견한 3명의 기사는 아주 유명한 전설 속에도 등장한다. 바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다. 전설 속 배경은 영국 콘월 지방이다.
원래 아서왕 이야기는 켈트족 영웅담에서 기원했다고 본다. 이후 수백 년간 구전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이나 성배와 같은 전설이 덧붙었다. 따라서 아서왕 이야기는 상당히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성배와 관련해서는 개략 다음과 같은 유사한 줄거리를 갖는다.
성서에도 나오는 아리마대의 요셉이란 인물은 예수의 숨겨진 제자로, 최후의 만찬 때 포도주를 담았던 잔을 보관한다. 그리고 로마 병사 '롱기누스'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흘러내린 피를 그 잔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는 예수의 시신을 자기 가족무덤에 안치할 수 있게 빌라도 총독의 허락을 받았지만, 4일 만에 부활한 예수가 무덤에서 사라지자 예수의 시신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갇힌다. 그때 예수의 목소리를 듣는다. 성배가 있으면 절대로 춥거나 배고프지 않을 것이니, 감옥에서 풀려나면 아발론에 성을 쌓은 후 세상을 구할 ‘선한 기사’가 나타날 때까지 성배를 보관하라는 명을 받는다.
요셉은 40년 형을 채운 후 성배를 갖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아발론 골짜기에 코르베닉(혹은 카보넥) 성을 만들고 성배를 숨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성배를 찾아낸 건 아서왕을 따르던 3명의 기사였다.
아서왕이 누군가? 아서는 브리튼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탄생 이야기는 거의 19금 막장드라마다. 아서의 아버지는 전국의 영주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틴타겔 영주의 부인 이그레인을 보고 그만 한눈에 반하고 만다. 마법사 멀린의 도움을 받아 틴타겔 영주로 변신한 그는 이그레인과 하룻밤을 보냈고, 아서왕이 태어났다.
다른 기사 밑에서 키워진 아서는 소년 시절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의 주인이 되며 왕위에 오른다. 왕궁은 카멜롯에 있었고, 왕비 기네비어와 결혼하면서 멀린이 만든 원탁을 얻는다. 150여 명의 기사가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원탁에는 아서왕을 포함한 12개의 지정석도 있었다. 여기에 성배를 찾아낼 ‘선한 기사’를 위해 13번째 자리를 비워뒀는데, 흠결 있는 자가 앉으면 대지가 그를 삼켜버렸다고 한다.
지정석에 앉은 원탁의 기사 중 랜슬롯 경이 가장 먼저 성배를 발견한다. 미남이고 누구보다 용맹했지만, 기네비어 왕비와 불륜을 맺은 흑역사 때문에 성배에는 접근할 수가 없다. 이후 보호트(또는 보르스), 퍼시발 그리고 갤러헤드가 모험을 떠나 성배를 다시 발견하게 되고, 3명의 기사 중 가장 흠결이 없던 갤러헤드가 성배를 찾아온다.
‘선한 기사’ 갤러헤드는 랜슬롯과 아리마대의 요셉 후손인 엘레인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다. 그의 탄생도 아서왕과 유사하다. (한마디로 막장이란 얘기) 엘레인의 아버지는 피셔킹(어부의 왕)으로 불렸는데, 환상 속에서 자신이 ‘선한 기사’의 할아버지가 될 운명이란 예언을 받는다. 후에 랜슬롯이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엘레인을 기네비어 왕비로 보이게끔 하는 묘약을 먹이고 두 사람의 동침을 유도했다. 갤러헤드는 그렇게 태어났지만, 랜슬롯은 나중에 자신이 속은 사실을 알고 엘레인을 버리고 떠난다.
후에 원탁의 13번째 자리를 차지한 갤러헤드는 성배를 찾은 후 승천했고, 퍼시발은 성배로 불치병을 고치게 된 피셔킹의 집에서 성배기사단을 조직해 성배를 보호했다고 한다. (결국,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존스 박사가 최후의 성전에서 마주친 기사는 바로 퍼시발인 셈이다!)
이후 기네비어를 사랑한 랜슬롯과 아서왕의 갈등으로 원탁의 기사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싸우게 된다. 아서왕이 프랑스로 달아난 랜슬롯을 쫓아간 사이, 카멜롯에서는 설상가상 그의 사생아였던 모드레드의 반란까지 일어난다. 아서왕은 랜슬롯과 화해하고 반란도 진압하지만 큰 부상을 입은 채, 아발론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는 많은 작가들을 거친 탓에 내용이 들쑥날쑥이다. 예로, 퍼시발이 성배의 기사가 되는 과정은 전래된 신화가 담긴 작자 미상의 12세기 책자를 참조해 슈레티앙이라는 프랑스 작가가 다듬었다. 하지만 집필 도중 작가가 사망하면서 독일작가, 폴프람 폰 에센바흐가 마무리했다. 템플기사였던 에센바흐는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왕 고드프루아가 남긴 저작을 참조해 파르치팔(퍼시발의 독일어명)이란 작품을 완성한다. 여기서는 갤러헤드가 아닌 퍼시발이 성배를 최종 획득하는 주인공이 되고, 퍼시발의 아들 로엔그린을 대를 이은 성배수호자로 그려낸다.
잘 알다시피 <파르치팔>과 <로엔그린>은 바그너의 오페라로 만들어졌고, 19세기 말 바이에른의 미치광이 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에 영감을 주면서 독일의 유명한 관광명소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일명 백조의 성)을 탄생시킨다. 디즈니사의 로고가 된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성’의 모태로도 유명한데, 화려한 내부가 유럽의 기존 전통 양식을 따르지 않아 매우 이채롭다. 특히, 방마다 채워진 벽화는 모두 바그너의 작품 내용이다. 루트비히 2세는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아발론의 코르베닉 성을 재현하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멋진 외관만큼 내부도 꼭 둘러봐야 한다. 오로지 가이드 투어만 가능해 충분치 못한 감상시간이 아쉽지만 말이다.
성배 기사 퍼시발에 푹 빠진 이가 또 있었으니, 아돌프 히틀러다. 그는 아리아 민족이야말로 유일한 성배의 수호자라 생각했고, 바그너의 오페라는 그 신화를 완성시키는 서사를 갖췄다고 믿었다. 나치의 군중 집회에는 어김없이 <로엔그린>의 전주곡 같은 바그너 음악을 틀었다. 그가 만든 최고 훈장이 템플기사단의 십자가였던 게 결코 우연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서왕 이야기는 지금도 서양인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킹스맨>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영화에서는 현대판 원탁의 기사들이 갤러헤드나 퍼시발 같은 전설 속 이름에 빙의해 성배를 찾는 모험에 동참한다. 물론 그 성배의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기사들의 이름만큼이나 아서왕 이야기의 여러 버전에서도 변치 않는 게 있다. 바로 지명이다.
혹 성배에 대한 단서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야기 속 지명들을 찾아 영국 콘월로 여행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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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사진출처]
사진3-1 : By Évrard d'Espinques - This file comes from Gallica Digital Library and is available under the digital ID btv1b6000093b/f78,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4915048
사진3-2우 : https://www.neuschwanstein.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