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 여행) 빌바오에서 '빌바오 효과'를 묻다

32/80 템플기사단 비밀 맛집 여행(스페인북부와 포르투갈편-3)

by 이경석

여기서 차로 1시간이면 바스크 제 1도시, 빌바오다.


한때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쇠퇴한 도심에 꽂아 넣은 멋드러진 건축물 하나가 도시를 다시 살린다는 의미다. 빌바오의 그 랜드마크가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네르비온 강가에 사뿐히 착륙한 UFO 같은 외관에 은빛 티타늄 판넬 3만 3천 장이 일제히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놀랍도록 황홀해진다.


스스로 거대한 조각작품이 되고자 입구조차 지상 대신 지하를 선택한 미술관이 빌바오에 가져온 변화는 더 경이롭다.


1997년 개관 첫해부터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건축물을 보려고 찾는가 싶더니 약 1,800억 원의 막대한 건축비를 3년 만에 모두 회수했다. 관광객들이 도시에 쏟고 가는 돈으로 4만 달러를 넘긴 1인당 국민소득은 스페인 전체 평균을 크게 웃돌았고, 인구도 전성기의 40만 명을 회복했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빌바오를 벤치마킹하겠다며 몰려들면서 이젠 컨벤션 산업까지 호황이다. 불과 30년 전과 비교하면 드라마틱한 변화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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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구겐하임 (56).jpg (사진6-6.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이경석)


그런데 이 모든 게 진짜 구겐하임 미술관이 혼자 부린 마법일까?


미안하지만 세상에 그런 단순한 방정식은 없다. 국화꽃 한 송이도 피우려면 수많은 인연이 필요하다는 싯구처럼, 빌바오가 살아난 건 다양한 상호작용의 결과였다. 그냥 돈 들여서 크고 독특하게 설계한다고 모든 게 랜드마크가 되지도 않는다.


빌바오 구시가지는 네르비온 강에서 남쪽으로 몇 블록 아래에 있다. 주민들에게 강은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다. 유럽 최강의 철강도시인 빌바오의 강 주변은 제련소와 조선소 차지였다. 1980년대 철강산업이 몰락하자 가동을 멈춘 공장은 우범지대가 되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bilbao과거사진.jpg (사진6-7. 빌바오 네르비온 강가는 원래 일반인 접근이 불가한 곳이었다 ©www.historytoday.com)


정책결정자들은 빌바오를 산업도시가 아닌 문화도시로 만들기로 했다. 도시재생의 타겟은 당연히 빌바오의 역사를 담은 강이었다.


빌바오 당국은 강 주변에 주민들을 위한 소규모 공공건축물부터 정비하기 시작했다. 정비를 마친 공공건축물들은 다시 공원이나 산책길, 놀이터 같은 야외의 공공 공간으로 연결시켰고, 구시가까지 트램이 놓이면서 강 주변은 북적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과거 조선소 자리에 들어선 구겐하임 미술관이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멋진 건축물은 외국 관광객까지 끌어모으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 것이다.


건축물 하나가 도시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빌바오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문화도시라는 당시로선 ‘뜬금없는’ 컨셉을 제시하고 흔들림없이 제대로 밀어붙인 행정가들의 예지력과 뚝심을 높게 평가한다. (실제로 시민폭동도 있었다. 필요한 건 공장이지 미술관 따위에 세금을 왜 써야 하냐면서 말이다)


또 다른 쪽에선 공공건축물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한다. 공공건축물이 주민들의 삶과 더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형성된 커뮤니티가 도시를 살린다는 거다. 남산타워가 서울을 상징할지는 몰라도, 내 삶에는 학교나 도서관, 주민센터나 어린이집 같은 곳들이 더 중요하다. 잘 만들어진 공공건축물로 인해 생활이 바뀌고 도시 경관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18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놀리가 만들어낸 소위 ‘놀리 지도(Nolli map)’는 도시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 사적 공간은 검게, 퍼블릭 공간은 하얗게 칠한 지도는 도시 내에서 사람들이 접근가능한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시각화해준다.


놀리맵.jpg (사진6-8. 놀리 지도, 로마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 인근)


로마를 대상으로 한 놀리지도를 보면 좁지만 변화무쌍한 골목길이 광장이나 공원과 만나고, 이는 다시 성당이나 집회소 같은 공공건축물 혹은 심지어 개인 가정집의 열린 중정까지 연결되면서 도시 구석구석을 호기심 충만한 탐험의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그러한 도시는 걸어다니는 게 즐거워 지루할 틈이 없다. 곧 사람들로 붐비는 큰길에는 자연히 시장과 상가가 발달하고, 이는 다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선순환을 일으킨다.


거기에 주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과 동네의 역사성, 건축가의 창의성이 버무려진 심사숙고된 디자인의 공공건축물은 동네에 점점이 박힌 보석이 되어 골목 깊숙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면 그 골목 주변까지 상권을 유인하는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면서 쇠퇴한 지역이 활력을 되찾게 된다.


빌바오는 도시를 다룬 서양의 이 오랜 전통을 충실히 따랐던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가 도시를 대하는 기준은 아직까진 사적 공간이 우선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들이 들어서고 남은 짜투리땅에 성의없이 들어선 공원들은 청소년들의 일탈장소나 될 뿐이고, 울타리나 화단, 심지어는 높다란 방음벽으로 도시와 접한 아파트단지 옆 인도는 도대체 누굴보고 걸으라는 건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결국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할 수 없이 돈을 내고 커피전문점이나 술집 같은 장소를 찾아야 한다. 심지어 그 장소들조차 빈부의 격차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니, 누구에게나 열린 도시공간을 포기한 대가는 공간의 계급화로 이어진다.


게다가 공공건축물의 수준은 어떠한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마치 물품을 구매하듯, 가격으로 설계자를 골랐으니 엄격한 좌우대칭에 위압적인 중앙계단이 설치된 볼품없는 사각형 건물은 십중팔구 공공건축물이다. 관리자가 주인 행세를 하는 공공건축물에 주민들의 삶이 낄 여지 따윈 없다. 게다가 보안과 관리상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 담에 가두니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할은 언감생심이다.


“강남은 동맥만 뻥뻥 뚫려있지만, 강북은 골목마다 실핏줄까지 살아있단 느낌이 들어”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에서 고향을 떠났지만 아직 서울 강남에 입성하지 못한 자신을 친구들이 비아냥거리자 주인공이 내뱉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 우리 동네들도 유럽 못지않게 공공의 영역이 실핏줄처럼 얽혀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개발과 정비라는 이름 아래 실핏줄이 부정되고 심지어는 제거되는 게 당연시되었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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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9. 좌 : 인도 따라 설치된 방음벽 ©국토교통부, 우 : 정부과천청사 전경 ©과천시)


오래전 TV를 보다가 누군가 이와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분은 일련의 건축가들이 내놓는 주장에 동조하며 공공의 영역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 현재의 도시계획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그 공간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명언처럼 이기적으로 계획된 도시공간이 사람들의 심성도 그렇게 바꿔놨다는 것이다. 건축가가 세상을 바꾼다는, 모더니즘 시대에나 통할 법한 건축엘리트주의적 발언이었지만, 나 역시 그 생각에 자유롭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걸 가만히 듣던 맞은편 출연자가 지나가듯 툭 던진 말이 인상적이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세계 최장의 업무시간에 하루종일 퍼블릭 영역에서 시달리고 있으니, 그나마 조금 남은 자기만의 시간에까지 굳이 그런 퍼블릭 영역을 찾고 싶지도, 만들고 싶지도 않을 거란다. 정확한 발언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지는 그랬다. 사회적 환경이 지금과 같은 공간을 요구했고 만들었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빌바오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옮긴대도 그 효과가 나올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내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33화에서 계속, 글이 괜찮았다면 '구독하기'와 '좋아요'를 꾹~눌러주세요~!)

*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실존하고 실재하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려둡니다.

이베리아 지도.png (이베리아 반도 지도와 이번에 여행할 곳들, 구글지도를 활용)



[사진출처]

사진6-6. https://www.historytoday.com/archive/bilbao%E2%80%99s-britons-mining-bisc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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