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절기
춘분과 추분을 흔히 이분(二分)이라고 총칭하는데, 하지 이후 낮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져 추분이 되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추분 이후부터 차츰 밤이 길어져 바야흐로 여름 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비슷해 보이는 추석은 음력이 기준점이 되지만, 추분은 태양력으로 정해진다.
출처: 위키피디아 '추분'
드디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졌다. 아니 이제는 밤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 무더운 여름은 점점 잊히고 선선한 가을이 더 기대되는 날이 시작된 것이다. '가을이 왔구나!' 싶은 것이 행사가 많아졌다. 주말마다 시내 곳곳엔 행사가 즐비하다. 이는 나와 아내가 주말마다 나가야 하는 곳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시골엔 곡식이 익어가고 과일이 영글어 가을이 온 것을 알겠지만 도시는 역시 축제인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여유로움이 싫은지 비 오는 날이 많은 추분 기간이다. 마치 가을장마처럼 계속 비가 왔고 또 비 예보가 진행 중이다. 비만 아니면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추분 기간 동안 크고 작은 행사가 집에서도 많았다. 주말엔 시내 곳곳을 누비며 다녔고 무엇보다 추석이 가장 큰 행사였다. 명절이 아무래도 예전만 같지 못하다고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또 현실이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마산과 용인을 어떻게 다녀올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냥 아내와 둘이서 가는 거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아기가 함께 하기에 꽤나 먼 길이고 고된 길이다. 용인이야 차를 타고 가면 되는 것이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함께 돌봐주시기에 늘 감사함으로 간다지만 마산은 좀 달랐다. 먼 거리에 집에 가면 어머니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오히려 우리가 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것이 1년에 몇 번 못 보니 많이 그리울 것이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추석 연휴 기간이 길다고 하지만 차로 가는 것은 무리고 ktx를 타고 가는 것이 나은데 표를 구하는 것도 어려우니 한 주 일찍 다녀오기로 했다. 아기 좌석까지 하나 더 해서 편하게 다녀오자고 예약을 하고 당일 출발을 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으나 그건 계획일 뿐이다.
우리가 예전과 달리 간과한 것이 아기의 성장 정도를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ktx안에서 아기는 마치 무법자처럼 행동을 했다. 자리에 앉아 있지 않으려 했고 말까지 시작하니 시끄러울 수밖에. 제일 큰 어려움이 조용히 해야 할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점. 이해도 되는 것이 왕성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상황에서 공공장소 에티켓을 이야기해봐야 의미가 없다. 아기는 여기도 집처럼 놀 것 많고 뛰어다니고 싶은 공간일 뿐이니 말이다. 그래도 갈 때는 괜찮았다. 다시 올 때는 사람이 많아 통로에 나갈 수조차 없어 먹는 것과 자기가 나온 영상으로 겨우 달래 가며 왔다. 매번 그렇지만 이번에도 걸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다행인 것은 마산에서 어머니를 뵙고 같이 식사도 하고 산책도 했다는 점. 어머니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예전 같은 에너지가 없으신 것이 좀 안타까울 뿐이다. 아기도 영상통화로 보다가 실제로 보니 낯설 수밖에 없으니 엄마에게서 떨어지지도 않았다. 나중에 이런 것들을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나 할머니를 본다는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을은 짧다는 말처럼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서로가 함께 하기엔 짧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세대야 길 수 있지만 두 세대 혹은 세 세대가 함께 하기엔 분명 짧다. 좋은 것만 나눠도 모자랄 시간. 좋은 날에 좋은 분들과 더 많은 것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