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절기
서리가 내리는 시기를 뜻하며 양력으로 10월 23일 무렵이 된다.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이다. 농사력으로는 추수가 마무리되는 때이다.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불과 2개월 전에 반팔을 입었는데 하루아침에 긴팔을 넘어 외투까지 입어야 했다. 길거리엔 아직 어색할 것만 같은 경량패딩을 입은 사람도 곧잘 보인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게 아니라 이미 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만추' 깊어가는 가을. 고요함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어색하지만 자연이 생기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 이제는 늦가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시간인 듯하다. 우리의 삶도 성장이라는 활발함보단 일상의 자연스러움에 스며들며 조금씩 익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상강의 시기가 되면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행사가 있으니 바로 아기의 생일이다. 태어날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두 돌이 되었다. 첫 돌 때는 아주 큰 행사로 치러지기에 정신없이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던 첫 돌... 그리고 감사한 일들도 많았던 생일. 두 돌 때부터는 큰 행사라기보다 온전히 우리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아직은 무언가를 선택하기 어려서 아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고 그 밖에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 그리고 장식품들... 나중에는 아기가 원하는 케이크를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다 해주겠지만 지금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준비했다. 풍선을 불고 예쁘게 꾸민 뒤 기념촬영도 하고 음식도 준비하는데 아기가 협조를 잘하지 않았다. 당연히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뭔가 좀 아쉬운 생일날이었으나 다행인 것은 전 날 아기가 태어난 산부인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왔다는 것. 매년 아기의 생일쯤 병원 앞에서 사진을 찍어 기념하기로 했는데 지금까지는 잘해오고 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기의 성장 과정을 한 장소에서 비슷한 시기에 남긴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아기의 생일 저녁 잠깐의 이벤트가 끝난 뒤 우리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나날들이었다.
가을이 더 멀리 가기 전 주말.. 가을을 느끼자며 파주로 향했다. 날씨 예보가 있었으나 체감하는 온도가 달라 옷을 고르는 과정에서 늘 다툼이 있었지만 이번엔 나의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파주는 바람이 많이 불었고 추웠다. 그런 날씨 속에 도착한 곳은 조용한 시골 마을 같았다. 박물관도 가고 예전에 갔었던 유명한 곳도 가 보았다. 아기는 뛰어다니고 싶어 때를 쓰고 이면도로임에도 차는 많고 길을 잘 못 들어 추위에 한 참 걸어야 했던 주말 오후.. 그렇게 썩 좋은 나들이는 아니었다. 매번 좋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기분 좋음 보단 아쉬움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일상...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무료하고 지루할 수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락함을 주는 그런 날이 아닐까! 이런 소소한 일상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이 또한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새로운 여행지나 큰 이벤트는 없더라도 평범한 하루 속에서 뭔가 의미를 찾고 함께 추억할만한 것들을 만들어 가는 것도 큰 행복인 듯하다. 매번 좋은 추억만 쌓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날 속에서도 분명 의미 있는 일들과 생각들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큰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 이젠 조용히 뒤를 돌아볼 때가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