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절기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되며 양력 11월 7일 또는 8일 무렵에 든다. 이 무렵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하며,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는다.
기다림은 오래지만 떠남은 한순간이라...
불과 2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팔을 입고 다녔던 것 같은데 벌써 거울 준비를 파고 있다. 11월 집 근처 쇼핑몰에서 트리가 설치되자 저건 좀 오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은 너무 짧았고 추억을 만들기에도 짧았다. 일상의 기쁨을 누리겠노라고 이야기했었지만 그래도 올 가을은 짧아도 너무 짧다.
아내와 아기는 11월 초가 넘어가자 더 늦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여행을 갔다.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갔는데 그 사이 나는 바쁜 학교 일로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아내와 아기가 처갓집으로 가면 휴가가 아니냐고 하겠지만 밀린 학교 일과 집안일을 히다보니 하루가 짧았다. 저녁 늦게나마 좋아하는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으나 그마저도 다음 날 지장을 주면 안 되기에 일찍 끄고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나름 계획을 했었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 이게 현실이었다. 다행인 것은 집수리를 마무리했다는 것. 아기가 있으면 절대 하지 못할 페인트칠, 오래 묵은 먼지 제거 등을 하고 나니 집이 좀 깔끔해졌다. 짧은 여행을 마지고 아내와 아기가 도착하는 공항으로 나가 마중을 했는데 출발 전부터 감기가 있었던 아기는 그대로였고 아내도 감기에 걸려 돌아왔다. 그래도 독감이 아닌 것이 어디랴. - 다음 주에는 내가 감기에 걸렸다-
제주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내와 아기. 혼자서 집에 있는 나. 예전 같았으면 집돌이인 나는 혼자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카페도 찾아다니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뭔가 어색했다.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할 줄 알았던 나는 더 이상 혼자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집수리도 음식을 만드는 것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올 가족을 위해서 하고 있었던 거다. '가족'이 주는 안락함은 혼자가 주는 자유로움보다 더 큼을 체감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겨울이 왔다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집 근처 쇼핑몰의 변화였다.
"아니. 벌써 트리를 만든다고?"
그랬다. 11월이 되자 곳곳에서 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쇼핑몰도 대형트리가 설치되었는데 '저건 너무했다'라는 말을 끊임어보이 내뱉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얼마 안 남았어."
생각해 보면 카페에서 크리스마스 행사와 다이어리 및 기념품 마케팅이 나오기 시작하는 때가 10월 말이니 빠른 것도 아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달만 하기엔 아까우니 두 달 먼저 해줘 더 오래 보게 되는 것에 감사하면 될 것을 난 또 너무 이성적으로 생각했나 보다.
아기는 대형 트리를 보자 신기해했고 '트리'라고 알려주자 비슷한 것만 봐도 "뜨ㅡ리"라고 말했다. 아기가 보기에도 반짝이고 화려한 것이 좋았나 보다. 에전엔 몰랐던 초겨울의 모습을 아기와 함께 느껴가는 시기...
가을이 더 길었으면 좋겠지만 대한민국, 한반도에 사는 이상 차디찬 겨울을 준비해야기에 마음껏 누릴 수가 없다. 겨울이 주는 시림보다 따뜻함을 더 찾기위해 분주히 움직일 수밖에...
아디오스 가을, 올라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