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림책 에세이] 난 개구리니까요 - 글/ 에릭 드라크만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계속 도전하다가 실패하면서 느끼는 고통이 클까, 아니면 자신의 한계를 알고 빨리 포기한 뒤에 느끼는 고통이 클까.
어느 쪽이든 슬프고, 힘들겠지만 나는 후자 쪽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에릭 드라크만 작가의 <난 개구리니까요> 에는 자신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면서 점차 성장하는 개구리 프랭크가 등장한다.
프랭크는 하늘을 날고 싶다. 그래서 노력해 보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하다. 프랭크는 새가 아닌 개구리니까. 개구리는 뛸 수 있고, 헤엄질 수는 있지만 날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개구리들은 날고 싶어 하는 프랭크를 비웃는다.
마음먹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던 프랭크의 부모님조차도 프랭크에게 개구리는 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나의 꿈을 지지해주지 않는 부모님이 야속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데 어려울 거라고, 안될 거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단호함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돌고 돌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오래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는 부모님께 안될 거라는 말씀을 들었던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의 꿈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때, 먼저 살아본 사람의 경험치로 볼 때는 불 보듯 뻔하게 안 될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마음먹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해왔던 프랭크의 엄마, 아빠도 프랭크에게 개구리는 날 수 없다고, 개구리가 하는 일 중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고 말한 거겠지.
그럼에도 프랭크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에게 꼭 보여주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프랭크는 자신의 뛰어난 수영실력을 발휘해 아기 새를 구해주었고, 새들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하늘을 난 것은 아니었지만 프랭크는 해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이룬 것이다.
꿈을 이룬 프랭크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자신이 하늘을 날 수 없는 개구리라는 사실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대신 뛰어난 수영 선수는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만만해한다.
첫째 아이와 읽었던 이 그림책을 어제 둘째와도 함께 읽어보았다.
마음을 담아 "너는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힘주어 읽어주었더니 아이가 물끄러미 나를 봤다. 그러더니 "엄마도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응원을 받으니 감격스러워서 뭉클해졌다가 "엄마 말 따라한 거야."라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 내 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솟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은 나도 그 말이 듣고 싶었었나 보다. 엄마인 나도 할 수 있다고, 마음먹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이다.
동요 중에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라는 곡이 있다. 어른이 들어도 심금을 울리는 가사이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그럼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넌 할 수 없어."보다는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이 훨씬 듣기도 좋고, 힘이 나는 말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꿈을 펼칠 수 있게 응원해주고 싶다.
설령 그것이 내가 보기엔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나와 아이는 다르니까 내가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될 것이다. 아이들의 한계를 내 마음대로 정해서도 안되고.
프랭크처럼 계속 도전하고 또 도전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단단해지겠지.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을 거라 믿는다.
개구리의 몸으로 하늘을 훨훨 날아오른 프랭크처럼 내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얼마큼 잘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이 나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