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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다 Sep 08. 2023

나만의 열매를 모으는 중

[그림책 에세이] 프레드릭 - 저자/ 레오 리오니

아이를 낳기 전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전업 주부가 된 지도 7년이 지났다.

집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했지만 그것이 경제활동은 아니었기에 늘 정체된 느낌이 있었다.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지심이 들 때마다 괜히 구인사이트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아이 눈에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레오 리오니 작가의 <프레드릭>은 그런 나에게 큰 위로가 된 그림책이다.

들쥐 가족은 옥수수와 나무 열매 등을 모으며 겨울을 준비한다. 단 한 마리, 프레드릭만 빼고.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 들쥐들의 물음에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프레드릭은 대답했다.

풀밭을 내려다보는 프레드릭에게 "지금은 뭐 해?" 묻자, "색깔을 모으고 있어. 겨울엔 온통 잿빛이잖아."라고 말했다.

한 번은 프레드릭이 조는 듯 보여 "너 꿈꾸고 있지?" 들쥐들이 나무라듯 말하자, "아니야, 난 지금 이야기를 모으고 있어. 기나긴 겨울엔 얘깃거리가 동이 나잖아."라고 말하는 프레드릭.




다른 들쥐들이 볼 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프레드릭은 그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고.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대로 차근차근 겨울을 준비한 프레드릭이 내 눈에 멋져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프레드릭의 행동이 답답하게 보일지 몰라도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프레드릭이 다른 들쥐들처럼 먹이를 모았다면 어땠을까? 먹이가 조금은 더 늘어났겠지만 결국 다 사라졌을 것이다. 프레드릭 역시 행복하지 않았을 테고.




겨울을 맞이하게 된 들쥐 가족은 먹이가 넉넉했기에 행복했지만 이내 먹이가 다 떨어져 버리자 들쥐들은 누구 하나 재잘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다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고 했던 프레드릭의 말이 생각난 들쥐들은 물었다.

"네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니?"

"눈을 감아 봐. 내가 너희들에게 햇살을 보내 줄게. 찬란한 금빛 햇살이 느껴지지 않니." 

"색깔은 어떻게 됐어?"

프레드릭은 파란 덩굴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꽃, 또 초록빛 딸기 덤불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프레드릭이 무대 위에서 공연이라도 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마치자, 들쥐들은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프레드릭은 수줍게 말했다. "나도 알아."




게으름을 부린 적은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보다 훨씬 더 부지런을 떨었다. 남편과 아이를 챙기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은 없이 그렇게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아이들을 돌보며, 가정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임에도 나는 나의 가치를 스스로 낮게 평가했다. 

그런 나에게 그림책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문이었다.

그림책을 읽고, 그림책에 관한 글을 블로그에 쓰면서 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꿈은 아이들이 잘 크는 것, 가족의 행복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꿈이 생겼다. 그러자 매일 반복되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보물 같은 찰나의 순간들을 기록하다 보니 차곡차곡 이야기가 쌓이고 있다. 

아이들이 언젠가 이 이야기들을 꺼내 본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하면 설레기도 하고,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옥수수와 밀과 짚을 모으지는 못하더라도 꿈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다독이며 프레드릭처럼 부지런히 나만의 열매를 모아봐야겠다. 언젠가는 이 열매가 결실을 맺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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