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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이 안 나게 따라주시겠어요?

몇 년 전 지인 몇 명과 어느 맥주집엘 들어갔습니다.

맥주 500cc짜리를 시켰던 것 같습니다.


한 동생이 종업원에게 말합니다.

"거품이 안 나게 따라주시겠어요?"


저는 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그건 왜? 그게 차이가 있나?"

"거품이 안 나게 따라야 맥주가 더 맛있거든요."

동생은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얼마 뒤 종업원이 맥주를 가지고 왔습니다.

종업원은 말을 귓등으로 들은 모양입니다.

모든 컵에 거품이 잔뜩 있는 채로 테이블에 잔을 하나씩 올려놓습니다.


우리의 눈은 그 동생을 향했습니다.

과연 뭐라고 말할까? 그냥 마시지.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잠시 찡그리며 맥주를 바라보다가 종업원에게 말했습니다.


"저, 아까 제가 거품이 안 나게 따라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이 맥주는 다시 가져가 주시고 거품이 안 나게 새로 따라주세요."


저는 이 동생이 까탈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저 같았으면 그런 주문은 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렇게 주문했다가도 거품이 있는 채 나오면 그냥 마셨을 거라고.

잔을 내어 왔는데 새로 가져다 달라는 건 좀 미안한 요구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요즘 이때의 기억이 종종 떠오릅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까탈스러운 요구도 아니었습니다.

맥주에 거품 좀 안 나게 따라 달라는 건데 이게 그리 어려운 요구도 아니잖아요?

종업원이 요구사항을 잊었든 무시했든 새로운 잔에 다시 가져달라는 것도 정당한 요구 같습니다.

단지 저에게는 이런 말을 꺼내기가 불편할 뿐.


이 친구는 종업원에게 새로운 잔을 가져달라고 말할 때 화를 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미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편안하게 자기 생각을 커뮤니케이션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면 이런 불편한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분명히 어떻게 일을 하자 하고 합의를 했는데 나중에 보면 합의한 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 뭐라고 다시 말해야 하지?

마음속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불편한 분위기가 되는게 싫어서 못하고 넘어간 적이 많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솔직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힘든 일인가 봅니다.


뭔가 불편해서 말이 안 나오는 순간이 될 때마다 이 맥주집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화를 내면 안 된다. 지나치게 공손하거나 미안해할 것도 없다.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보다 내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더 집중하자.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하고 나면 조금 편안한 기분이 됩니다.

딸이 좀 더 자라면 솔직하고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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