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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거에 돈 아끼지 말거라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거에 돈 아끼지 말거라."


이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지만 저는 듣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정작 먹는데 돈을 아끼셨거든요.

제가 먹는 것에만 신경 쓰셨을 뿐.


중학교 때 매점에서 뭘 사 먹어 본 적이 손가락에 꼽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무슨 아침 7시 50분까지 학교를 오라고 했던 건지.

컴컴한 겨울 아침, 학교를 올라가는 언덕길에서 파는 샌드위치 냄새는 제 배를 곯게 했습니다.

그때 제 키가 180cm, 몸무게가 52킬로그램쯤 나갔을 겁니다.

어머니는 이런 삐쩍 마른 저를 보며 마음이 아프셨는지 더욱 이 말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다른 건 아껴도 먹는 거에는 돈 아끼지 말거라."


하지만 어머니만 마음이 아픈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또한 고작 38kg 정도의 몸으로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안타까웠거든요.

저는 결국 졸업할 때까지 그 샌드위치의 냄새만 매일 맡았을 뿐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에 어머니와 산책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시 찾아가 봤습니다. 그 분식점은 이제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서 사라졌더군요.


이제 저도 다 자랐습니다.

키도 더 컸고 몸무게도 75킬로그램이나 나갑니다. 돈도 그럭저럭 잘 법니다.

어머니랑 밥을 먹으면 비싼 것을 사드리려 합니다.

한 끼에 5만 원. 한 끼에 10만 원.

얼마나 자주 본다고. 한 달에 한두 번 보는 걸.

앞으로 어머니를 만나서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대략 추정해보면 약 1,000시간.

볼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아끼지 않고 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먹는 것에 돈 아끼지 말자.

그동안 우리 못 먹고살았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잘 안 드십니다. 본인은 배가 부르다면서 자꾸 저에게 음식을 건네주십니다.

"너무 비싼 거 먹지 말자. 괜찮다."라고.

너 많이 먹으라고.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습니다.

먹는 거에 돈 아끼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은 무척 슬픈 말이었다는 것을.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하셨던 말이구나.

제가 먹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을 아껴 써야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더 이상 그 말씀을 안 하셔서 다행입니다.


딸이 자라면 저는 어머니와 달리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먹는데 돈 너무 많이 쓰지 마라. 아껴 써 버릇 해라."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먹는 거에 돈 아끼지 말거라."

이 말만큼은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1984년, 가리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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