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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스 청카바

저는 가리봉 시장 안에 있는 어느 낡은 집에서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가리봉동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가리봉동에 있던 전선 커넥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셨는데 부업거리를 잔뜩 들고 집에 와서 밤에도 일하곤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던 단칸 방안에는 이런 커넥터들 뭉치로 가득했습니다.

어머니가 하셨던 일은 저 전선의 꼭다리와 선을 꼽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일이 기계화가 안되어있으려나요? 하여간 당시에는 저걸 손으로 꼽았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자 저는 어머니 일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누나도 함께 했습니다.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세 가족이 둘러앉아 저 커넥터를 꾹꾹 눌러 꼽으며 대화도 나누고 티비도 보고 했습니다. 이제는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았네요.


사진에 있는 커넥터 정도는 하나 완성하면 10원 정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일한 만큼 돈을 주셨습니다. 좀 더 가격을 많이 쳐주셨던 것도 같습니다.

이게 남의 돈을 번 제 첫 경험이었던 것 같네요.


돈을 받으니 그만한 동기 부여가 없었습니다. 누나와 저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2주 정도를 열심히 일하면 15만 원 정도를 벌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1995년도,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15만 원이면 꽤나 큰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돈을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주셨고 누나와 저는 옷을 사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와 셋이 버스를 타고 영등포 롯데백화점에 갔습니다.

제가 선택한 옷은 리바이스 청카바.

가격은 무려 15만 원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이던 저와 누나는 친구들이 메이커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부러워했습니다.

이후로도 전선 꼽아서 번 돈으로 롯데백화점에 가서 아디다스 추리링 같은 것들을 15만 원씩이나 주고 사곤 했습니다. 사놓고 몇 번 입지도 않았네요.


어머니는 옆에서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 당시 집 월세가 15만 원도 안되었을 텐데요.


저는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런 메이커 옷이 값어치를 제대로 못하는구나. 비싸기만 하고 심지어 예쁘지도 않네.

그 이후로는 백화점에서 옷을 사지 않고 이대입구나 동대문 밀리오레에 가서 옷을 샀습니다.

어찌나 지독하게 깎았는지 한 번은 옷 값을 다 계산하고 뒤돌아서는데 상인에게 중국에서 왔냐는 비아냥까지 들은 적이 있네요.(이렇게 딜 이후 상대방에게 욕먹는 상황이 최고로 잘한 협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다시는 이렇게 하고 싶진 않네요 ㅋㅋ)




며칠 전 날씨 좋은 날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다시 가리봉동에 가봤습니다.

제가 뛰어놀던 땅에 넷마블 신사옥인 G스퀘어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보러 가고 싶었거든요.


넷마블의 창업자인 방준혁 의장도 가리봉동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의 지역 발전을 위해 신사옥을 이 곳에 지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예전 살던 집들을 하나씩 찾아가 봤습니다. 어릴 적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그 당시 쓰던 물건은 다 버렸는데 리바이스 청카바만큼은 아직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비싼 돈 주고 산 게 어찌나 아까운지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부동산 낭비를 싫어 하지만 이 옷만큼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때 생각을 하며 아껴 쓰고 행복하게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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