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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다.

유튜브에서 일방통행 서울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을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제목도 잘 지었습니다. 일방통행 서울민국.


통계청에 들어가 보면 서울특별시 인구는 해마다 10만 명 정도씩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만 그 주변의 인구가 빠르게 늘어가면서 점점 도시가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 주변에 붙어있는 동네들, 그러니깐 판교, 분당, 일산 이런 곳들은 예전부터 서울이었고,

이제는 하남, 성남, 구리, 부천, 수원 같은 주변 도시들도 다 서울이라고 불러야 할 듯합니다.


즐거운 소도시 여행

코로나 이후 인구 20만 이하의 소도시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이런 도시에 가서 구경을 하며 한적함을 느끼고 오는 경험이 저는 좋습니다.

마음이 안 좋을 때도 있습니다. 시내에 나가보면 도시가 망해가는 것이 눈으로 느껴지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찾아볼 수가 없고 거리에는 힘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간혹 보이지만 이런 아이들은 20살이 되면 서울로 떠나겠죠.


아 어쩌나. 이러다 지방 도시들 다 죽겠군.

잘 살릴 방법은 없을까?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도시를 하나 만들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우선 땅이 필요하고 이 땅에 도로와 항만 시설.

도시가스, 전기 송배전, 통신선, 상하수도 시설.

병원과 은행, 소방서, 경찰서 등의 관공서.

공원과 도서관 같은 문화/종교 시설.

버스와 택시 같은 대중교통 수단.

아이들이 다닐 학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회사. 사람들이 다니고 싶을 만한 좋은 회사들.

이런 걸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요? 짐작도 잘 안됩니다.


너무나 큰 프로젝트라 망하면 절대 안 될 것 같습니다만 잘된 경우보다는 망한 경우를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혁신도시라 부르는 곳들.

이렇게 큰돈으로 투자를 하는데 사람들과 기업이 안 따라온다면 만들어둔 인프라가 너무 아깝지 않나요?


지방에 도시를 하나 키우겠다고 결정했다면 돈 아끼려고 한적한 곳에 싸구려 땅 사서 개발하지 말고 그 지역의 최고 입지에 돈을 집중해서 투자하는 게 결과적으로는 더 쌀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메가급 도시. 그러니깐 서울이 점점 더 커지면서 그곳 인프라들을 오밀조밀 효율적으로 쓰는 현재의 모습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근데 모든 사람이 서울로 오면 남은 땅은 뭐에 쓰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 가고 싶은가?

건물주인 것만 빼면 저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거의 완전한 자유의 몸입니다.

1인 개발자로 돈을 벌고 아내도 일을 그만뒀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아직 들어가지 않은 상태.

맘에 꽂히는 지역만 있다면 언제 어디로든 가족이 이주할 수 있거든요.

지방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이곳에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하며 도시를 둘러봅니다.


공주, 논산, 강화, 가평, 청평

부산, 울산, 경주

순천, 여수, 전주

강릉, 속초, 영월

그리고 제주.


최근 몇 년간 여행한 곳들인데 아직까지는 살고 싶은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서울과는 다른 모습들. 한적한 느낌. 맛있는 지방 음식들.

새로운 생활이 참 좋습니다만 일주일 정도 지내다 보면 뭔가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서울이 그리워지는 것.

왜 그럴까요? 서울엔 모든 것이 있어서?

저는 무엇보다 젊은 에너지가 서울에 다 모여있기 때문에 서울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계속 여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서울보다 더 살고 싶은 지역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다.

저는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가리봉 시장 안에 있는 어느 단칸방.

병원도 못 가고 그 단칸방에서 할머니가 받아줘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가난했지만 그런 상황을 원망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생각도 딱히 해본 적이 없습니다. 경제적인 부분만큼은요.

그냥 저에게 주어진 환경을 잘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이 미국에서 태어난 게 정말 운 좋은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부자가 됐지 저기 어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으면 자기는 무명으로 벌써 죽었을 거라고.


"서울에서 태어난 것이 스펙이다."

라는 유튜브의 댓글들을 보면서 나도 운이 좋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20살 때 논산 연무대에 살던 가족들을 떠나 엉엉 울며 홀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가족들 농사 도와주며 살다 죽기 싫어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지금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마음과 똑같이.

그게 1971년쯤의 일입니다. 5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서울로의 길은 일방통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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