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아봤어?
# SCENE 1. 서울의 어느 병원, 4개월 후
“어… 이게 뭔가요? 엑스레이 사진에 총알 같은 게 보이는데요?”
의사의 말에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다. 총알? 내 발에, 총알이 박혀있다고? 4개월 전, 이스탄불의 그날 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 SCENE 2. 이스탄불의 그날 밤
2022년 4월, 나는 유럽 전체 일주라는 대장정의 중간 기착지로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잠시 들렀다. 다음 날 코카서스 3국으로 넘어가는 짧은 일정. 저녁 식사를 위해 시내 중심가인 탁심 광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빵!’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에 멈춰 섰다.
소리와 거의 동시에, 오른발 뒤꿈치에 전기에 감전된 듯한 쨍한 충격이 왔다. 이어 찾아온 것은 감각이 사라지는 듯한 마비 증세. 처음에는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신발 뒤꿈치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바닥에는 동그란 쇠붙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지나가던 차에서 부품이라도 튀었나 보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 통증은 점점 심해져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확인해 본 뒤꿈치는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발바닥은 무언가 불쑥 솟아올라 단단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당시 나는 총알은 상상조차 못 한 채, ‘충격으로 뼈가 어긋났나 보다’라고 어리석은 자가 진단을 내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나야 한다는 조급함에 병원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인 게 응급처치의 전부였다.
# SCENE 3. 총알과 함께한 4개월의 동행
그렇게 나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뒤꿈치에 정체불명의 이물감을 품은 채, 나는 절뚝거리며 4개월간의 여행을 강행했다.
한두 주면 낫겠지 했던 상처는 한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유럽의 아름다운 자갈길은 내게는 고통스러운 지압판과도 같았다. 구석구석 걸어 다니며 도시의 속살을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여행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하지만 ‘100개국 돌파’라는 강렬한 목표는 통증을 이기는 마약과도 같았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던 것일까. 나는 아픔을 참고 계속 걸었고, 마침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끝으로 100개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 SCENE 4. 경악, 그리고 감사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한국의 병원. 엑스레이 사진 속, 내 발뒤꿈치 뼈 옆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38구경 권총탄 추정 물체.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지난 4개월의 고통과 사투가 퍼즐처럼 맞춰졌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걸 발에 넣고 그 험한 길을 계속 걸어 다녔다니.
돌이켜보면 천운의 연속이었다. 총탄이 조금만 위로 향해 복숭아뼈를 맞췄다면 나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적절한 치료 없이 방치할 경우 파상풍이나 2차 감염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저 연고 몇 번 바른 게 전부였는데.
문득 엉뚱한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총에 맞은 걸 처음부터 알았다면, 과연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모르고 계속 걸었던 것이 약이었을까, 병이었을까?
수술로 총알을 제거하고 처음으로 통증 없이 땅을 딛던 날, 나는 갓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세상을 다시 배웠다. 자유롭게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가 이토록 눈물 나게 행복한 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진짜 고생 끝에 찾아온 낙이었다.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대체 그동안 수많은 나라의 공항 검색대는 어떻게 통과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