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 허르헉
스무 명 남짓한 고등학생들과 함께 대형버스를 타고 몽골의 초원을 달렸다.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 표지판도 없는 길을 기사는 내비게이션 없이도 망설임이 없었다. 옆에 앉은 몽골 사무소 직원에게 물었다.
“내비게이션이 없는데 목적지까지 갈 수 있어?”
“몽골의 운전기사들의 특별한 능력이지. 어디든 잘 찾아갈 수 있어.”
수도인 울란바토르에 사는 그녀는 고향에 갈 때마다 깜짝 놀란다고 덧붙였다. 심야버스를 주로 타는데 자다가 깨서 밖을 보면 캄캄하다고 했다. 기사에게 어디쯤 왔는지 물으면 답을 해주고, 정확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언젠가 몽골인의 시력이 좋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편리함의 풍요 속에 노출된 내 눈은 알 수 없는, 저 멀리 목적지가 그에겐 보이는 걸까. 그들의 감각이 놀라웠다.
8월은 몽골을 방문하기에 최적기라고 한다. 긴 겨울의 혹독한 추위는 유목민들도 견디기 힘들정도, 하지만 8월 중순에 이 곳에 도착한 우리의 일정엔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비바람을 뚫고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넓은 초원에 있는 전통가옥 게르에서 지내는 한 가족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집주인은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한다는 음식 ‘허르헉’을 준비했다. 굵은 돌덩이를 뜨겁게 달구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양고기를 냄비에 넣은 후, 집게로 돌을 집어 고기 사이사이에 넣었다. 감자와 당근도 넣었다. 4평 남짓한 작은 게르 안에 우리는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허르헉’의 냄새와 따뜻한 온기가 게르 안을 가득 메웠다.
가족의 아이는 내가 일하는 국제개발기구의 후원 아동이었다. 아이는 한국 후원자에게 받은 편지와 사진을 들고 왔다. 그리고 자신의 후원자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자, 현지 직원이 통역을 했다.
“너랑 닮은 거 같대.”
“내 후원 아동도 몽골에 있어. 이 곳에서 아주 멀지만.”
입사하면서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처음 받은 사진 속 아이는 나와 닮은 머리칼에 붉은 볼, 양갈래로 묶은 머리에 분홍색 종이꽃을 달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때의 나를 보는 듯했다. 그 아이가 사는 나라, 몽골에 왔다. 멀게 느껴졌던 아이의 일상이 좀 더 자세히 그려졌다. 한국의 7배가 되는 나라, 아이가 사는 마을은 이 곳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허르헉이 완성됐어요.”
“와- 한국의 갈비찜 같아요.”
같이 간 아이들은 신기한 듯 접시에 담긴 고기와 감자를 조심스레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그 사이 비가 그쳤다. 집주인이 환기 겸 게르의 문을 활짝 열자, 하늘과 땅을 이은 큰 반원의 무지개가 보였다. 예쁜 무지개를 보며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후원 아동에게 편지를 써야지, 네가 사는 나라에 갔었다고 거기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무지개를 보았다고, 편지의 첫 문장은 새로 배운 몽골어 인사 ‘센베노(안녕)’ 로 안부를 전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