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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뚝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by 김욱래

화장실 통로 벽에 일렬횡대로 박혀있는 소변기 밑, 예의 그 도랑에 고인 걸쭉한 오줌물에서 분명히 코를 쿡쿡 쑤셔댈 알키한 냄새와 재래식 변기 구멍들에서 쳐 올라오는 대단한 악취가 섞여 진동하고 있을 텐데도 그는 그걸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이 우스워져서 키득키득 웃고 싶었다. 그런데 아주 잠깐뿐일 테지만 그 고독도 괜찮았다. 비록 거기에 숨었지만, 아니 손정원의 성화에 못 이겨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시간을 조금 연장해 보는 거지만, 모두 자신이 선택한 것이었고 오랜만에 아무도 없이 자기 자신과만 대면하는 그 순간이 이상하게 호젓했다.


이윽고 부산스럽게 전투화 발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쾅, 하며 부서질 듯 출입문이 열려 젖혀졌다.

“이 새끼가 뒈질려구. 쫄다구가 고참을 패?”

병장 셋에 반장 둘이었다. 그 다섯이 기염을 토하며 그가 서 있는 통로 구석으로 접근해 왔다. 그는 그들 중에, 이틀 전 연병장 담가 작업 중 돗자리 위, 물이 빠져 광이 나던, 신선 같은 전투복의 병장 둘도 끼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순간 그는 다시 재빠른 선택이 필요했다. 달려들던 다섯의 속도가 왠지 갑자기 팍 죽었다. 그때 그는 저것들도 다 조져버릴까, 하고 바쁘게 고심했다. 일단 피를 보았던 그는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어떡하다가 등 쪽을 공격받더라도 세 놈쯤은, 하고 그는 판단했다. 하지만 신병 하나를 놓고 떼거리로 달려드는 그들이 희극적으로 보였고 그래서 어떤 안쓰러움이 그를 눌렀다.

그는 그 다섯의 심정이 기가 막힐 것일 수도 있다는 데에 빠르게 동의했다. 전투복이 희끄무레해질 때까지 살아낸 그들을 쓰러트려야 하는 게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는 그들의 당혹감을 배려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일단은 양팔로 머리부터 감싸고, 그러지 않아도 뜨끔 거리는 허벅지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쪼그려 앉아 다섯의 보복을 유도했다. 그의 암묵적 동의를 득한 열 개의 무지막지한 전투화 발들이 짓밟아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광분에 떠는 김신혁을 그는 팔뚝 사이로 올려다보았다.

전투화 발들은 무자비하게 그의 등짝을 찍어댔다. 허리께는 무슨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을 다시 어쩌겠다는 생각을 그는 단념하기로 했다. 그들의 광분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역시 일, 이등병 때까지, 어쩌면 상병을 달고 나서도 온갖 이유로 구타당하며 더러운 인간들 속에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끔찍한 시간들을 견뎌왔을 터였다. 다시 말해, 적어도 25개월 이상씩은 쌓아 올린 제 ‘짬밥’이 억울해서 본전 생각이 치밀어 오르게끔 불을 지른 것은 그였다. 스스로를 하늘이라고 뻐겨대던 그들이었지만, 그는 전입 후 그들을 몇 번 마주치지도 못했었고 또 그들이 그에게 그리 심하게 한 적은 없었다. 바쁘게 밟히면서도 그는 어느 정도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광적인 난동이 어느 순간 멈췄다. 가까스로 그가 일어났을 때 누군가가 멱살을 잡았다. 빨간 줄이 하나 쳐진 노란 완장의 2소대 반장, 그날 저녁의 일직하사였다. 그는 자신이 교문에서 무슨 선도부에게 잡힌 후배 중학생 같은 기분이었다. 일직하사 배역을 맡은 2소대 반장이 그의 허리춤을 채서 행정반의 대장 당번실까지 끌고 갔다. 그의 체육복 허리 고무줄이 쭉 늘어졌다.

작은 테이블 건너에 인사계 이 상사가 앉아있었다. 물론 그는 인사계에게 경례하지 않았다. 40대 후반으로 혁대를 타 넘은 뱃살이 흘러내려 넘실거리는 빵빵한 몸집의 이 상사가 시작서부터 걸걸하게 소리쳤다.

“이 새끼, 이거. 너 각오했지?”

작은 키래도 이 상사는 행동거지에 어떤 묵직한 중량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뽑아온 이 상사를 오랜만에 찬찬히, 그리고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이젠 그저 인간 대 인간일 뿐이었으니까. 고리눈이 부리부리한 이 상사가 커다랗고 두툼한 입술을 벌리면서 다시 뭐라 소리 질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는 제법 눈을 부라려대는 이 상사가 진짜로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다고 느꼈다. 아무튼, 그는 그 대답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픽, 웃고 나서 물론, 이라고 말했다.


이 상사는 검붉은 낯이었는데 그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퍼 대는 술 때문이었다. 이 상사가 그를 앉으라고 했다. 후들거리는 삭신을 가누며 그는 이 상사가 눈으로 가리키는 접이식 철제의자에 털썩 내려앉았다. 일직하사는 제가 무슨 보좌관인 것처럼 이 상사 뒤쪽에 기립하고 있었다. 슬쩍 그가 일직하사를 올려다보았는데 자신에 대한 적의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무슨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 배시시 웃는 얼굴이었다.

“나우권. 너 이게 무슨 일인 줄 알지?”

이 상사가 검붉은 얼굴을 들이대었을 때 그는 후끈한 콧김을 맞았다. 그가 이젠 다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론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극상(下剋上)’이란 걸 왜 몰랐겠는가, 그는 그저 빨리 처리되고 싶었다. 머리를 원위치한 이 상사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뗐다.

“왜 그랬나?”

이 상사는 거침없이 막 나가는 신병이 희한했다.

“인사계가 다시 묻는다. 나우권. 왜 그랬어?”

이 상사는 이제 부탁 조였다. 그는 선심을 썼다.

“저는 육군 이등병이지 인간 이등병이 아닙니다.”

이 상사가 고리눈을 부릅떴다.

“……그래, 좋다. 인간이라……. 일주일 동안 매일 서정락이가 그랬단 말이지?”

그는 그 레퍼토리가 귀찮았다. 이런들 관계없었고 저런들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 상사는 계속 채근 댔고 그게 더 귀찮아져서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걸 왜 인사계나 소대장에게 말하지 않았지?”

“원래 그 지랄들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쪽팔리게 사내새끼가 그딴 거나 일러바칩니까? 그 새끼는 제가 직접 교육시키고 싶었고……”

그가 짜증을 냈다. 이 상사의 인상이 팍 험궂어졌다.

“교육을 시킨다고? 이 자식! 너 진짜 각오한 거지?”

“예. 각오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대들듯 재차 확인해 주었다. 물론 그는 육군교도소를 각오했다. 그 정도 각오 없이는 당최 사내로서의, 아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 ……좋다. 그럼 여기에다 그간의 일 자술서 써라.”

이 상사가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씩이나 버려가면서 왜 쓸데없는 절차를 진행하려는 걸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쓸 기분 아닙니다.”

계속 그가 퉁명스럽게 툭툭거리는데도 이 상사는 화를 내지 않았다. 27년이 넘는 군 생활 동안 수도 없는 사병들을 다뤄온 이재건 상사였다. 그런데 맘대로 하라며 버티는 병사는 처음이었다. 앞에 앉아있는 신병이 이 상사에겐 이상하게 진짜 사내자식 같아 보였다. 그 신병이 위험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도 이유 없이 이 상사는 괴물 같은 그에게 끌리고 있었다. 사내라……, 사내자식이란 말이지? 이 상사는 그에게 담배를 한 개비 건네주고 자기도 피워 물었다.

“좋아. 네 기분 인사계가 이해한다. 그럼 얘기만 해라. 전입 올 때부터 지금까지 서정락이 새끼가 한 짓을. 인사계가 받아 적을 테니까. 이걸 작성해야만 해. 네가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 상사의 표정과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래야 쓸데없는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을 거야. 자, 인사계에게 얘기해 봐.”


그랬다. 이 상사는 그 신병에게 사내끼리의 공감이라고 해야 할 어떤 묘한 감정이 드는 것이 이상했다. 이미 예전부터 군대 전부가 무미건조해졌는데도 말이다. 오로지 퇴근하면 지직거리는 삼겹살에다가 소주병을 비워대는 것이 낙이었다. 이 상사는 푸, 하고 연기를 뿜어 올리며 그때, 앞에 앉은 신병과 같이 젊었던 때를 돌아보았다.

26년 전 그때, 자신은 일병이었다. 애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방 보병 중대의 행정병이었던 이 일병은 무려 한 달짜리 병가 휴가증을 스스로 만들어 탈영했다. 변심한 여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부산의 어느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을 하던 중이었다. 이 일병은 옛 애인의 손목을 잡아끌고 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는 중간 물론 따라오지 않으려 하는 여자의 뺨도 몇 대 후려쳤다. 이 일병은 그 후 대구 등지의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하며 그 여자와 살기 시작했다. 아니, 거의 감금했다. 이 일병은 처음엔 그래도 좋았지만, 나중엔 허망해졌다. 여자도 결국엔 체념했지만 이미 그녀는 빈껍데기였다. 알맹이는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날치기당한 그 예비신랑에게 예전에 파 먹혔던 것이었다. 이제 이 일병은 자신의 인생을 건 의미를 찾을 수 없었고, 옥죄여오는 암담함으로부터 더 이상 도망칠 데가 없었다. 이 일병은 자신에게 패배했고 앞날에 무릎을 꿇었다. 한 달간의 장기휴가를 마친 이 일병은 야음을 이용하여 황량한 땅으로 돌아왔다. 만취한 이 일병은 중대장 집 담을 타 넘어 벌렁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른 아침 중대장은 자기 집에서 코를 골고 있는 행정병을 발견했다. 그때까지 중대장은 휴가증만 믿고 있었다. 중대장은 뺨을 갈겨서 이 일병을 깨웠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너 영창 갈래, 말뚝 박을래?”


그는 이 상사가 괜스레 푸근해졌다. 그리 궁금하다면 까짓것, 하고 무슨 남의 일인 듯 무덤덤하게 서정락 건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 상사는 그때 서야 서류를 꾸밀 수 있었다. 자술서 대필이 끝난 후엔, 한번 살아보겠다고 처참한 몰골을 해가지고는 내무반으로 도망쳤던 서정락이 일직하사에게 잡혀 왔다.

이 상사가 코는 찌그러지고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 틈새로 겨우 실눈을 뜨고 있는 서정락을 쏘아보았다.

“너 이 새끼. 인사계가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나쁜 새끼였네? 이거 어떻게 처리해 줄까?”

서정락의 대답은 황당했다.

“저……, 저 좀 딴 부대로 보내주십시오. 쟤, 무……, 무서워서 생활 못 하겠습니다.”

서정락이 뭘 요구할 자격은 없어 보였다. 그의 명치끝으로부터 서정락에 대한, 아니 미물에 대한 엄청난 경멸이 치밀어 올랐다. 이 상사는 상황을 대조해 볼 요량으로 서정락을 붙잡아 두었다. 끙, 하고 일어선 그는 행정반을 나섰다. 어느덧 컴컴했다. 내일이면 육군교도소든 어디든 가겠구나, 하며 그는 내무반 쪽으로 향했는데 떼거리로 짓밟혔던 몸뚱이가 더 욱신거려 왔다. 사열대 옆쪽에 쭈그려 앉아 모아 온 전투화 10여 켤레를 닦고 있던 군화 조 일병들이 그를 흘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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