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그는 내무반 문짝을 열고 막 나오던 차요철과 조우했다. 흠칫한 차요철은 옆으로 몸을 틀어 비켜서더니 그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내려오자 재빠르게 손을 내려 사타구니를 가렸다. 그가 조용히, 그리고 권위 있게 지시했다.
“너, 내무반 들어가 있어.”
차요철은 바로 제 눈앞에 있는 관심병사가 어떻게 처리되는 건지 못내 궁금해서 행정반에 가려던 것을 즉각 단념했다. 얌전히 돌아선 차요철은 그 신병의 사람의 것이 아닌 섬뜩한 눈빛을 봤던 터라 이내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차요철이 다소곳이 제 관물대 앞으로 올라가 앉은 침상에는 저녁을 먹고 난 상병급 이상 여덟아홉 정도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앉았거나 모포에 기대 늘어져 있었다. 그가 들어섰을 때 침상 위 인원들의 곤혹스러운 시선들이 그에게 모였다.
“왜? 이 개새끼들아!”
그가 욕을 버럭 내질렀다. 《권력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책 제목 그것이었다. 그걸 쟁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잠깐뿐일 테지만 그는 그럴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인원들 중에는 꼭 그러고는 싶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 잘난 ‘짬밥’의 권위나 위세는 어디다 ‘짬’을 시켰는지 무슨 유인원무리 모양 그저 멀뚱멀뚱 퍼져 있는 꼴에 그는 화가 치밀었다.
“뭐? 이 새끼들아. 자신 있는 새끼 함 덤벼 보든가.”
내무반은 적막을 유지했다.
“에이, 비겁한 새끼들!”
세 번이나 소리쳤지만, 그는 군상들의 침묵 앞에 왠지 참담한 기분이 되었다. 이미 자신의 모든 게 망쳐진 뒤였다. 그는 그게 화가 났다.
침상 한가운데 걸터앉아 한동안 맞은편 벽만 쳐다보던 그의 감정은 기폭이 심했다. 그는 담배를 한 대 천천히 피워 물었다. 심하게 등짝이 쑤셔오는 데도 그는 한 다리를 억지로 포개 올렸다. 인원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며 내무반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벽에서 시선을 거둔 그가 이번에는 궁상맞게 앉아있는 인원들을 물끄러미 둘러보다가 다시 부아가 솟았다. 그들로 인해 자신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화를 치밀어 올렸다. 그가 다시 소리를 빽 질렀다.
“정찰대? × 까고 있네. 병신 같은 새끼들.”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4사단 정찰대는 자신을 잘못 뽑은 것이었다. 이따위로 구질구질한 데였다면 자길 뽑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공정연대 중사는 틀렸다. 땡비 조교도 틀렸다. 4사단 정찰대는 센 데가 아니라 더럽고 비참한 곳이었다. 군대는, 아니 세상은 언제나 저희 마음대로 처분했다. 그는 그런 게 분했다. 자신이 그렇게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처리되어 온 것에 새삼 분노가 일었다.
욕설을 몇 차례 얻어먹은 침상 위의 몇이 그래도 마주 노려보다가 상처 입은 늑대의 그것 같은 붉은 섬광을 내뿜는 그의 눈빛과 부딪히자 서둘러 딴 데로 고개를 돌렸다. 더는 그러고 버틸 수 없었던 그들은 하나둘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출구 쪽으로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들 중 하나를 오른손 검지로 찍었다.
“어이, 호모새끼. 넌 이리 와야지? 아주 ×을 뽑아버리게.”
슬리퍼도 꿸 경황없이 2내무반으로 튄 차요철을 마지막으로 내무반은 텅 비었다. 그는 마저 담배를 피우고 나서 꽁초를 밟아 짓이겼다.
제2부 끝. 감사합니다. 제3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