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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녀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by 김욱래

이글대는 오후의 연병장에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그가 고집 센 폐타이어를 매달고 땅바닥만 내려다보면서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자니 시간은 더 느려터지게 어기적거렸다. 무겁게 지고 무겁게 끌고 가는 것. 어쩌면 이런 게 삶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렇게 체감했다. 아랫배에―어떨 때는 치골에―박히는 빳빳한 나일론 밧줄의 집요하고 지겨운 통증은 결국 허벅지의 고통을 이겼고, 그는 무슨 머나먼 전장에서 감나무가 있는 고향 집 마당을 그리는 병사처럼 무언가 다른 것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 무슨 생각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처음에 그에게 떠오른 건 염치없이 신병교육대 위병소 옆 플라타너스의 녹색 그늘 속, 작은 꽃무늬들의 하얀 원피스, 동기의 여자였다. 하필 그녀는 하얀 원피스였었다. 그는 곧 그 여자의 야시시한 원피스를 떨쳐버리려 힘썼다. 그러다가 젠장, 이번에는 밀드레드까지 생각났다. 그는 서둘러 좌우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후엔 며칠 전 꿈속의 처녀 같은 모친, 파란색 땡땡이의 하얀 원피스가 나풀거리다 이내 사라졌다. 그러다가 불현듯-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져 있던 그녀, 생각만으로도 죄스러운 그녀의 하얀색 그 보풀 거리는 티셔츠가 확 떠올랐다. 한참을 그녀가 궁금했다. 하지만 자신은 여기에 있었다. 그것도 오랫동안 있을 것이었다. 몽롱한 열기 속에 어느덧 그는 나른한, 이제는 색 바랜 옛 추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때 그는 국민학교 3학년 어린애였다. 아마 여름방학이었을 거라고 그는 기억했다. ‘서울 이모’네 가족이 그의 촌집을 방문했다. 서울 이모는 친이모는 아니고 모친이 소녀 시절 고향에서 함께 놀며 자란 동네 언니였다. 그 언니는 중학교 입학 전에 서울로 이사 갔고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으며 딸 둘에다 아들 하나를 두었다.

그의 모친은 그녀를 서울 이모라고 부르게 했다. 칼칼한 성미에 옷을 멋지게 입는 서울 이모는 그가 시골 국민학교에 들어갈 때 입학선물로 세로줄 무늬의 갈색 어린이 양복 한 벌과 하얀 중절모에다가 하얀색 구두 한 켤레까지 사 가지고 왔다. 그 국민학교 운동장엔 촌티가 줄줄 흐르는 시골아이들 가운데 중절모까지 쓴 멋쟁이 꼬마신사가 한 명 서 있었다. 그였다. 그는 그때 자신이 서울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서울 이모의 둘째 딸 남궁현주는 그보다 한 살 많았다. 그 여름, 서울 이모네가 그의 촌집에 왔을 때, 수줍게 그녀를 대면한 그의 어린 가슴은 마구 쿵쾅댔다. 깔끔한 그 소녀는 시골의 모든 것에 신기해했다.

“얘, 이건 뭐니? 저거는?”

그녀가 그렇게 물어보는 마당의 물건들-예를 들면 무슨 농기구들이나 심지어는 거름통까지-, 그 시골스러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그는 아는 대로 가이드했다. 사투리를 조심하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똘망똘망 눈을 빛내는 그녀는 진지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유리컵에 빠진 구슬치기용 유리구슬이 또각또각 돌아가는 듯했다.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그는 쩌릿쩌릿했다. 또, 그녀가 그를 촌놈이라고 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혀 그런 내색도 없는 것 같아서 그는 놀랐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어린데도 현명하고 곧아 보였고 촌놈인 그를 배려했으며, 진짜로 시골이 신기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눈동자와 단발머리는 아주 까맸고 살결은 대조적으로 맑고 하얬다. 그녀에겐 시골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큰 도시의, 그것도 서울 소녀만의 얄미운 세련됨이 묻어났다.


그는 그때 그녀를 질투했으며 또 동경했다. 현저하게 물질문명이 우월한 외계 어느 다른 은하에서 강림한 것 같은 신비한 그녀의 존재는 그가 우러러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서울 이모의 큰딸은 별로 ‘서울’스럽지도 않았고 털털했다. 그 보다 두 살이 적은 아들은 서울 말씨를 빼면 수더분하고 붙임성이 있었다.

그 후에도 한두 번 서울 이모네가 온다고 했을 때 그는 그녀가 오는지의 여부만 궁금했다. 서울 이모가 선물로 듣도 보도 못한 서울 물건들을 사 와도 그는 그녀가 같이 오지 않았으면 다 시시껄렁했다. 그가 지나가는 말처럼 서울 이모의 큰딸에게 조심스레 물으면 그녀는 시험공부나 피아노학원 등등으로 바쁘다고 했다. 이젠 그녀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그는 풀이 죽었다. 그는 시골이 답답했고 촌집이 싫어졌다.


그래도 50분을 끌면 10분은 쉬었다. 모두 개인 의자, 그러니까 자기의 폐타이어를 깔고 앉았다. 그는 어깻죽지에 배겨있는 배낭을 벗어 땅바닥에 툭 던져놓고 미적지근하다 못해 따듯한 수통 물 몇 모금을 마셨다. 푹 젖어있는 등짝이 끈적였다.

국민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서울 이모는 서울 구경을 한 번 시키겠다며 그를 보내게 했다. 서울 이모는 고향 동네 동생의 큰애를 유난히 아꼈다. 그녀는 자주 진기하고 멋진 선물들을, 서울에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을 그 시골 녀석 앞으로 부쳐주었다. 그의 부친은 동네 방앗간에서 찐 백설기 한 말을 이불 가방에 넣은 후, 표고버섯 말린 거는 그에게 들리고 직행버스를 탔다. 떡은 뻑뻑하게 식었다. 잠깐 서울이모에게 인사만 하고 난 부친은 그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소녀의 방을 슬쩍 구경했다. 그녀의 작은 방에는 검정 피아노가 있었고 책들과 계집애라는 게 확연한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인 책상 앞 벽에는 학업성적 우수, 피아노경연대회입상 등등의 유리 액자들과 금색, 은색의 메달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그 집엔 퉁퉁한 처녀 가정부도 있었는데―그 가정부 처녀는 식탁 옆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직접 보는 식탁과 그 문화가 신기했고 거기 앉았을 때 뻘쭘했다.―, 매일이 바쁜 여장부 타입―그 시절엔 커리어우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의 서울 이모는 가정부와 그녀에게 자기 대신 촌놈을 데리고 먼저 창경원*구경을 시켜주라고 했다. 서울은 두렵고 멋진 곳이었으며 마치 다른 행성처럼 보였고 야물게 똑 부러지는 그녀는 그 외계 도시의 깐깐한 왕녀(王女) 같았다. 왕녀의 서울거리 인도 블록을 그는 조심스레 밟았다. 그녀가 이번에는 촌놈에게 서울을 설명해 주고 싶어 했다. 그는 촌스럽고 두툼한 주홍빛의 뻘건 점퍼를 입었고, 그녀는 세련되고 새빨간, 몸에 딱 맞는 여자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청명하고 쌀쌀한 그 겨울날, 창경원에서 가정부는 우리에 갇힌 독수리들을 배경으로 둘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가 독수리 우리 앞, 검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쇠파이프 울타리에 먼저 올라가 걸터앉자 그녀도 바짝 곁에 올라앉았다. 그녀는 그와 어깨높이가 같았다. 그녀의 밑단을 많이 접은 블랙진(black jeans)은 약간 여유가 있었다. 그녀의 블랙진은 새빨간 점퍼와 너무 잘 어울렸다. 그는 촌티 나는 뻘건 색 점퍼에 더 색깔이 맞지 않는, 살이 쪄서 작기까지 한 황토색에 가까운 갈색의 코듀로이 바지를 껴입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밉도록 멋진 옷차림과 매무새가 탐났고, 그녀가 진짜로 자신의 곁에 다가앉아 있는 것이 설렜다. 그는 깔끔하고, 똑똑하고, 세련된 서울 소녀와 쇠파이프 울타리에 나란히 올라앉아 있는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그녀는 그녀의 가족들에게는, 특히 자신의 남동생에게는 더 선머슴―‘선머슴’이 서울 이모 가족 내 별명이었다.―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에게는 선머슴처럼 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에게 왠지 조심스러워한다고 느꼈다. 그녀는 약간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더 좋았다. 손이 곱을 정도로 추웠던 그날, 그의 곁에 앉았던 그녀는 여성스러웠다. 그는 뻘겋고 빨간 점퍼를 입고 울타리에 걸터앉은 소년과 소녀 뒤쪽에 진갈색 독수리가 커다랗고 거친 날개를 펼치고 있는 그 컬러사진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 일제의 한국강점기에, 창경궁 안에 동ㆍ식물원을 만들면서 불렀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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