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다른 목적으로 내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기에는 두 명씩 왔는데, 몇 번 온 다음에는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어보시면 더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텐데요.”
내 책을 읽어본 일이 없으면서 그러는 것이었다. 이제 그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고 했고 그네들이 내는 돈도 돈이기에 나쁠 것은 없었다.
“사장님. 어서 이리로 앉아보세요.”
다른 이용객들이 있는 시간을 용케도 피해서 오는 그 여자들이 나를 자꾸 채근했다.
“글쎄, 커피 퍽부터 빼야 한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저흰 잘 몰랐어요.”
언제 관심이나 있었나? 자기네들 목적만 급하지. 그래도 그 여자들은 내 카페의 이용객이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맞추어 주었다. 그 여자들은 죽음 이후에 대해 주로 얘기했고, 나는 문학에 관해 말했다. 한 여자는 인물 사진들을 한쪽 벽에 왜 붙여놓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이 내가 소설 작가가 되게끔 한 선생들이며, 빌헬름 프리드리히 니체와 헤르만 헤세의 부친은 목사였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특히 서머싯 몸을 지목하면서 절망에 빠졌던 내 청소년기에 그의 소설 작품 한 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강조했다.
“문학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에요.”
여자는 끈질겼다.
“낮에는 바쁘시니까 저녁엔 뭐 하세요?”
“목욕탕 가서 땀 흘려요.”
“그다음에는요?”
“집에서 맥주 마셔야죠.”
“그럼 쉬시는 날은 시간 되시죠?”
“아뇨. 취재 안 가면 자야 해요. 이 일이 보기보다 힘들어요.”
이런 식으로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다른 여자가 더 온다는 것이었다.
“아주 예쁜 분이세요."
단정한 옷차림의 여자는 전도사라고 했다.
“우리 전도사님 예쁘시죠?”
나는 그 여자들이 보낸 강의 영상들을 보고 있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짜증이 났다. 전도사라는 곱상한 여자가 나중에 혼자서 왔을 때 인물들 사진 밑자리에 마주 앉았다.
“또 누구한테 그러시면 안 될 거 같아서요. 소설가한테 무엇 때문에 소설을 쓰냐니요? 성경에 다 있다고요? 아니, 그러면 음악가도 음악을 할 필요가 없고 미술가도 미술을 할 필요가 없겠네요? 결론은 오직 성경! 인문학적 기본 바탕도 없이 무조건 하나님만 알면 되는 건가요?”
나는 여태 꾹꾹 눌러놓고 있었던 분풀이를 했다.
처음에 종일 한두 잔씩 팔 때 몇 차례 와서 나와 소설에 관해서 얘기하던 또래쯤의 사내가 있었다. 언제는 가는 눈발이 휘날리던 겨울날이었는데 그가 오더니 나는 모르는 가수와 노래인 폴 앵카Paul Anka의 〈파파Papa〉를 듣고 싶다고 했기에 내가 그 곡을 찾아 틀어주었던 기억도 있다. 또 언젠가 그가 몇 사람을 데리고 왔었을 때 매장 안에 다른 이용객이 여럿인 것을 보고 그가 내게 반가운 눈길을 보낸 다음에는 이제 되었다고 여겼는지 그 뒤로는 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용객이 몇 안 되던 시절에 몇 번 온, 옷차림과 행동거지가 처녀 같은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언제는 자기가 가끔 간다는 도내의 꽤 먼 작은 읍의 카페를 얘기하길래 쉬는 날 친구를 차에 태워 가 본 적이 있었다. 40대 초반의 남자가 하는 작은 카페였고, 카운터 앞쪽으로 ‘정치 얘기 금지’라고 쓴 나무 팻말을 걸어 놓았다. 시골 읍이어서 오른쪽 사람들이 대다수라 40 초반에 왼쪽인 저 듣기가 아주 싫은 모양이었다. 그 카페는 2년쯤 후 그쪽으로 지나갈 일이 있어서 보니 진즉 망해서 흔적마저 없었다. 한 날, 그녀는 시모에게만 돈을 가져다주는 남편 문제로 내게 푸념했다. 나는 그녀의 처지를 안쓰러워하며 듣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 말을 안 듣고 계시네요?”
물론 내가 그녀의 말만을 집중해서 듣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도 그 후로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살집이 있고 목소리가 걸걸한, 낙이 없는 어두운 얼굴을 한 서른 초반 나이의 여자도 가끔 왔었다. 그녀는 올 때마다 반주를 한 잔 걸치고 난 낯빛이었다. 그녀가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위쪽의 골프장 캐디라는 것을 어려움 없이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매장 책장에서 책을 한 권 빼내서 빌려달라고 했다. 여동생의 책이었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그녀는 일주일 정도 뒤에 그 책을 가져왔는데, 그녀가 그 책을 읽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녀는 그 후로 다른 골프장으로 갔는지 발길을 끊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남녀는 서로 너, 너, 하는 것으로 보아 수십 년 만의 동창회에서 만나 눈이 맞은 듯한 사이로 역시 오는 사람 얼마 없을 때 가끔 각기 차를 가지고 왔었다. 여자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는 흰색 독일제였는데, 눈이 가늘고 듬성듬성 내리기 시작하던 때 먼저 올라와 내리더니 아랫길 쪽을 멀리 바라고 섰다가 애틋한 손짓을 했다. 이윽고 남자의 차가 올라왔고 역시 서로 좋아 죽었다. 매장 안의 한 테이블에만 다른 이용객들이 있었지만, 그 남녀는 쌀쌀한 기온인데도 굳이 나가서 뜰의 한쪽 구석 자리를 택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어느 정도 안쓰러웠으나 그다지 문학적이지는 않았다. 그네들은 그런 식으로 서너 번 온 후로는 다시 찾지 않았다.
비슷한 경우로 이번에는 30대 후반쯤의 남녀였다. 몇 번 여자 혼자서 와 따듯한 카페라테와 조각 케이크를 시켜놓고 앉아있었다. 내가 왜 혼자 있느냐고 물었다.
“아직, 그 사람 골프 치고 있어요.”
각자의 차 두 대가 같이 올라오거나, 그런 식으로 여자가 먼저 와서 한참을 기다리는 편이었다. 어느 추운 날 남자는 화목난로 곁의 흔들의자에 몸을 묻고 한 시간 넘게 자다 간 적도 있었다. 그 남자와 여자의 얼굴빛도 올 때마다 그다지 밝지 않았었다. 서울에서 왔다고들 했는데 어느 때부터 더는 오지 않았다.
나는 매장 안이나 바깥을 손보면서 장사 준비를 할 때 어떤 자리들 앞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쓸쓸하게 떠올랐다. 카페는 훨씬 좋아졌는데 그들은 과거의 사람들이 되었다. 잘 오는 이용객을 혹여 내가 쫓았던 것은 아닐는지……. 왠지 나는 다 무상하게 여겨졌다.
“동물은 영혼이 없다고요? 동물도 다 생각하고 움직여요. 사람도 동물이에요.”
내가 항변했다. 나는 온몸으로 생각하기에 그것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 이런 식의 쓸데없는 대화였다. 그녀들은 계속 와서 나를 괴롭혔다. 그녀들은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무슨 범죄 집단과 비슷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단적 정체성이나 문화에 속하려 하고 그것을 통해 위안을 찾으려 하는 것이 그녀들 종류였다.
불굴의 그 여자 전도사는 내게 이제부터는 시간에 맞추어 실시간 강의를 시청하면서 서로 간에 소통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한 번은 그녀에게 언제 카페를 문 닫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산속에서 단단하게 살아가는 나를 왜 자꾸만 방해하나. 그냥 돈벌이만 하면서 살기도 벅찬 일이다. 일반 사람들은 카페 하나 하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더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책을 써낼 궁리까지 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런데 왜 이런 나까지 못살게 구는가. 나는 그럴 겨를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여자 전도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문학적인 숲 운영자예요. 가진 것 없이 오직 소설을 써가기 위해 이 산속에 들어온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네요. 자금도 없이 카페를 시작했기에 이루 말로 다 못할 고생을 하며 이만큼 만들어 놓았지요. 하지만, 그러느라고 그 3년 넘게 소설을 못 썼어요. 어젯밤에도 돈 문제로 아내와 대판 다퉜어요. 그래요. 내가 이 카페를 하는 것은 오로지 돈을 벌면서 틈틈이 소설을 써가려는 목적밖에는 없어요. 처음에는 오는 손님 막지 않는다고 여러 말씀,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알아가려고 했는데, 내 사정도 모르고 부담만 가중되어 마음이 고통스러워요. 이제는 실시간 강의에 소통까지 해야 한다니, 돈을 벌며 소설을 써가야 하는 게 목적인 작가에게는 너무나 방해되네요. 앞으로는 훼방받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내 본질을 찾아 카페 돈벌이와 집필에 전념할 생각이니 양해 바랍니다. 그럼, 건강하세요.
가까스로 물리쳐서 얼마간 평화롭다가 제2진이 왔다. 1진의 패퇴를 모르는 것으로 보아 1진과의 소통이 없었던 듯했다. 나는 이제는 처음부터 귀찮아서 실존주의를 꺼냈다.
“피투성이라고 하죠. 인간은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냥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일 뿐이에요.”
여자의 대꾸가 웃겼다.
“그럼 실존주의를 믿으세요?”
맨날 꼭 무엇인가를 믿어야 하는가? 그리고 실존주의는 믿고 말고 할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매장 앞마당에서 집게로 담배꽁초들을 주워내고 있는데 친구 차가 올라왔다.
“뭐 해? 이런 데 와서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들도 있어?”
“불국사에서도 버릴 사람들이지.”
바쁜 중간중간 여전히 정찰 차량이 올라왔다가 댈 데가 있는데도 그냥 돌려 내려갔다. 하릴없이 차 기름 닳아가면서 뭣 하는 짓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해 10월은 지금까지의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나는 그달을 마감하면서 잇몸이 부었고 몸의 피로를 절감했다. 나는 그래도 내가 쉬는 날 날씨가 끄물끄물하거나 비 소식이 있으면 좋았다. 아무래도 서로 장사가 다소 못할 것이었다. 곧 저녁식사를 해야 해서 이용객이 뜸해지는 오후 5시 무렵에 나도 위쪽 카페를 정찰 갔다. 그 카페도 주인 차 한 대만 서 있었다. ……너와 나는 이게 무엇 하는 짓이냐……. 덧없고 무의미한 일이었다.
돈으로도 안 되는 것이다. 일 매출이 내가 더 많으니 포털 사이트에서의 상위 노출 같은 것은 전연 관계없었다. (그 카페가 쉬는 날보다 다른 날들이 내 매출이 더 높을 때가 많았다.) 나는 돈을 들이지 않았으니 설사 장사가 덜 되더라도 괜찮지만, 너는 더 팔아야 하지 않나. 뭔가 차별성이 있어야지 남들 다 하는 대로 해놓으면 되나. 너는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나는 밤 장사를 안 했으므로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 보면 그 카페는 이용객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나 같아도 을씨년스러운 산골 저녁에 오지 않을 것이었다.
‘너와 나는 반대다. 나는 무에서 유를 만들었고 너는 계속 내리막길이며 나는 계속 올라왔다.’
이 지역 문인협회의 사무국장을 했던 여자와 나를 오빠라 부르던 화가를 비롯해서 아까 말한, 이제는 오지 않는 사람들이 여럿이어도 나는 여태껏 매출 그래프를 우상향시켜왔으나, 앞으로 6개월 정도를 보면서 이유 없이 그래프가 하강하면 때려치우리라고 생각했다.
‘난 네 것만 뺐으면 되는 거야. 한 사람이라도 먹고살자……!’
위쪽 카페 여자는 무슨 생각으로 버티는 것인가. 혹여 언젠가 감염병 시국이 끝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하고 있는가. 독자 여러분은 안다. 나아지기는커녕 훨씬 더 나빠진다는 것을. 나는 정신없이 바빴던 날보다 몇 잔 안 나갔던 날이 더 피로했다. 전날 장사가 시원치 않았으면 잘 될 때까지 옷뿐만 아니라 매장 음악도 같은 것을 연일 틀었다. 기침과 가래가 이상했던 것으로 보아 내게도 그 감염병이 몇 차례 왔다 갔던 듯했다.
이제 벌써 3년이 넘게 지나가 버렸다. 오전 10시 언저리에 집을 나서면서도 나는 혹여 이용객이 벌써 와 있을지도 몰라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었다. 카페 가는 길에서 생각했다. 나는 사업을 하는 것인가. 돈을 벌어야 할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돈 때문에 그 산속으로 들어간 것인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나날은 간다. 세월이 가는 만큼 돈으로 남을 것인가, 나라는 존재의 어떤 가치로 남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