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퇴사를 위한 시간

난 더 이상 그들의 팀원이 아니다.

by Bullee

여러 이유로 인해 이전 직장에서 한 달간 알바를 하게 되었다. 가평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한 달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퇴사 후 한 달만에 출근하려고 하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일할 때 워낙 팀워크가 좋았던 지라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자리에 후임이 온 것 말고는 크게 바뀐 게 없었기에 큰 부담 없이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날 출근하고 익숙하게 인사하고 원래 일했던 자리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느낀 감정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정규직과 계약직 간에 느끼는 차별적인 느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거에 있어 차별을 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 팀원들과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랄까? 사람들도 그대로고 환경도 그대로인데 무언가 그들과 나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팀원이었던 이들이 팀 회의를 하고 차를 마시는 걸 함께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왠지 그 자리에 내가 없다는 사실에 서운함도 밀려왔다. 그래서인지 왠지 이방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그날 밤 집에 가서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왜 서운해 한가 생각을 해봤다. 나랑 멋진 팀워크로 함께 일했던 이들이 새로운 사람과 팀워크를 맺으며 일하는 걸 보며 마치 헤어진 옛 연인이 새로운 애인과 잘 지내는 것 보는 느낌이랄까? 질투심인가? 아님 서운함인가?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다 문득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편하자고 자리를 박차고 퇴사할 때 그들은 여전히 치열하게 회사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내 자리에 들어온 사람과 좋은 팀워크로 자신들의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근무할 때 팀워크가 좋았다고 여전히 내가 그들의 팀원은 아닌 것이다.


환경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 게 오판이었다. 이미 그들은 내가 없는 환경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변한 환경을 알아채지 못하고 예전 같은 분위기 기대했던 건 나였던 것이다. 예전에 나를 대했던 것처럼 대해주길 기대한 것이다. 철없는 아이처럼 칭얼거렸달까? 문득 며칠 전에 읽은 책 구절이 떠올랐다. 변화에 적응하기 두렵기에 안정적인걸 추구하기에 꼰대가 된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꼰대가 되는 게 두려워 퇴사를 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른 사이에 이미 꼰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더 이상 그들의 팀원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팀원이 아니란 사실이 조금 서운했지만 좀 더 있어 달라는 팀원들의 요청에도 퇴사를 한 건 나이기에 약간의 서운한 감정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간 내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에 집중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기로 했다.


사실 예전에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는 민원을 상대하고, 다른 팀원에게 문제가 있을 때 도와줘야 하고, 윗사람들이 언제 부를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귀를 열어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는 오지라퍼 기질이 늘 발동하여 같은 팀 옆 팀 상관없이 일을 도와줬었다. 지금도 오지랖 기질이 완전시 사라지지 않아 좀 떨어진 곳에 일하면서도 후임자와 예전 팀원들 일에 자꾸 끼어들려고 했다. 이제 그들의 업무인데 자꾸 내가 끼어드는 게 나 스스로에게 자꾸 미련을 남기는 것 같아서 일단 나에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예전에 친구 녀석이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자 헤어지기 전 이별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헤어질 거면서 왜 여행을 다녀와야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이번 아라를 통해 어렴풋이 그 친구의 심정을 알 것 같다. 관계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지만 그들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퇴사가 처음인 나에게 있어 이번 한 달은 소중한 경험이자, 진짜 퇴사를 위한 시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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