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 몰래 산 물건

에스프레소 머신

by Bullee

아직 각시에게 들키지 않은 몇 안 되는 귀중한 존재다. 걸리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집에 가져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쓰기 때문이다.


하루에 4잔 이상 마실 정도로 커피를 좋아한다. 일이 막혔을 때 심심할 때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늘 커피를 찾는다. 건강이 안 좋아서 끊었지만, 원래는 믹스 파였다. 달달하고 왠지 힘 나는 것 같은 노란색 포장지를 좋아했다.

믹스를 마시다 갑자기 요리가 배우고 싶어 졌다. 지금은 없어진 낙원동에 있는 요리학원을 찾아갔다. 직장인 환급과정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등록하려니 괜한 두려움이 생겼다. 남자가 요리를?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당시에 나로서는 조금 부끄러웠다. 왠지 주목받을까 봐 두려웠다. 이런저런 핑계로 주저하고 있을 찰나 '바리스타 과정'이 내 눈을 통해 들어와 뇌에 작은 자극을 주었다. '그래 이거야!' 요리보다는 주목을 덜 받을 거라는 안도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커피 과정에 등록했다.

비록 바리스타 시험에서는 떨어져 평범한 커피 애호가가 되었지만 그때 경험으로 커피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내가 구매하는 분야가 커피 관련 제품으로 확장이 되었다. 캡슐커피 머신부터 드립용 도구까지 주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각시의 그릇과 접시만 허용됐던 공간에 점령군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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