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는 눈을 떴다. 느낌으로는 저녁인 것 같다.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오늘 하루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던가?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고. 오늘 바로 그 상대성이론은 민희에게 적용해야 할 것 같다. 그와 만나기로 한 저녁이라는 시간이 너무 오지 않았다. 그녀는 저녁을 빠르게 맞이하기 위해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깨어있는 순간 즉 시간이라는 걸 인식하는 동안에는 너무나도 느리게 갔다. 그래서 그녀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잠이라는 방법을 썼다. 만약에 예전에 그녀였다면 아마도 스스로를 비웃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예전의 자신을 잊은 듯했다. 완전히 버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 그녀는 잃어버렸을 듯한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는 연애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자기는 느끼지 못할 것 같았던 감정을 지금 느끼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신기했다.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에서 그녀는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낯설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모든 각오는 되어 있어서 그런지 마음은 편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직감적으로 그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문이 열며 조용히 들어와 아무것도 안 한다. 민희가 아는 척을 먼저 해야 입을 열었다.
「왔어요?」
「오늘도 상담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여기서 누워 있으면서 가장 필요 없는 말이 문지 알아요?」
「글쎄요?」
「지금 몇 시예요?라는 말이에요. 처음에 깨어났을 때는 지금이 몇 시인지 궁금했는데 지금은 지금이 몇 시인지가 크게 중요치 않아요. 그냥 감으로 낮과 밤 정도 느끼는 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좋네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삶. 부럽네요. 저는 늘 시간과 싸우면서 살고 있는데.」
「저도 그렇게 살았죠. 하지만 막상 시력을 잃고 누워있으니 시간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서는 오늘 하루 종일 시간 때문에 잠만 잔 자신이 생각 나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시간에서 벗어난 게 즐거우신가 봐요.」
「아. 그것 때문에 웃은 건 아닌데. 그래도 뭔가에서 벗어나는 건 꽤 즐거운 일이네요.」
「해방감을 아시게 됐다니 축하합니다. 앞으로 인생이 조금은 쉬워질 수 있는 조건이 되셨군요.」
「일단은 주어진 퀘스트 하나는 깬 건가요?」
「인생이 게임 같으면 참 편하겠죠?」
「글쎄요. 게임은 안 해봐서. 그래도 일단 앞으로 인생이 쉬워질 수도 있다니, 이게 다 훌륭하신 의사 샘 덕분이죠.」
「여전히 돌팔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면서..」
「눈도 잠시 좀 놓으려고요. 샘 말대로 언젠가는 돌아오겠죠. 아마 시력이 돌아오면 시간도 다시 절 구속하겠죠?」
「본인이 하기 나름이겠죠? 그나저나 제가 말한 건 생각해 보셨나요?」
「아침에 말한 간병인이요? 아시지 않아요? 제가 낯선 사람을 싫어한다는 거.」
「물론 알죠. 하지만 어제처럼 또 그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마냥 누워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활동을 하면 시력을 빨리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낯설겠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을 거예요. 있는 듯 없는 듯 있을 테니. 저를 오랜 시간 동안 봤던 분이라 아마 민희 씨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예요.」
「어떤 사람이기에 샘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거죠?」
「아. 저희 어머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