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의 하루는 단순했다. 아침에 민혁이 출근 전 챙겨놓은 아침을 먹고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켠다. 그리고는 민혁이 준 약을 먹고 침실로 가서 다시 누워 잠깐 잠을 잔다. 그가 준 약은 먹으면 졸려서 꼭 잠을 잠깐이라도 자게 된다. 사고가 나기 전 그녀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집은 적막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이 조용한 게 싫었다. 사람이 사는 공간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게 싫었다. 그래서 민희는 일부러 보지 않는 거실 텔레비전을 틀어 놨다. 자고 일어나면 점심은 챙겨서 먹는다. 그냥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밥솥에서 밥을 퍼다 먹는 간단한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꽤 난도가 높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반복하다 보니 익숙해져서인지 이제 꽤 잘 챙겨 먹는다. 가끔 이모가 다녀간 날에는 식탁이 차려져 있어 그나마 쉽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민혁이 소개해줘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만난 그녀는 절대 먼저 민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최대한 민희와 안 마주쳤다. 성격이 꽤 괜찮아진 이후로 몇 번 민희와 이야기는 해서 꽤 친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병인은 최대한 민희를 피해 집을 다녀갔다. 게다가 민희가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아침에 메모지에 적어 놓으면 대신 구해다 주었다. 민혁의 말대로 민희에게 가장 알맞은 간병인이자 도우미였다. 점심을 먹고 약을 먹고 잠깐 자고 일어나면 늦은 오후가 된다.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 소리를 듣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만큼 소리로 모든 상황을 유추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민희가 좋아하는 프로는 대부분 토크쇼나 시사프로그램 같은 프로이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대사에 맞춰 최대한 상황을 상상해보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상황에 따른 인간의 감정이 다양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만든 결계에 넣어놨던 감정들을 민혁을 통해 봉인을 해제했지만 단 시간 내에 모든 감정들을 제자리에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통해 감정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민혁이 퇴근해 그녀의 저녁을 챙겨줬다. 평범하고 단순한 하루 일과지만 민희에게는 매일매일이 소중했다.
그날도 똑같은 하루였다. 점심을 먹고 약을 먹고 일어난 뒤 거실에 앉아있던 그녀는 문득 밖을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옷을 챙겨 입은 뒤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거실을 지나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민혁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가 낮에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을 거의 없었기에 민희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지 걱정이 됐다.
「뭐. 갑자기 보고 싶어서요.」 민혁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민희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그런 답이 싫지는 않았다.
「좀 있으면 볼 텐데..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했어요.」
「걱정을 왜 해요?」
「낮에는 먼저 전화한 적이 없었잖아요.」
「아 그랬나요? 그럼 앞으로 보고 싶으면 낮에도 전화를 할게요」
「일하는데 굳이 안 그래도 돼요.」
「전혀 일에 지장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뭐 하고 있었어요?」
「아. 조금 답답해서 잠깐 밖에 나가볼까 하고요.」
「안돼요. 아직은 내가 말했잖아요. 밖에 혼자 나가는 건 위험하다고요.」
「괜찮아요. 이제는 안 보이는 게 조금 익숙해져서. 밖을 다녀봐야 밖에도 적응을 하죠.」
「나랑 같이 다니면서 적응하면 되죠. 암튼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내가 좀 더 고민해볼게요. 알겠죠? 난 일하러 가봐야 해서 좀 있다 집에서 봐요.」
「알겠어요. 좀 있다 봐요.」 민희는 아쉬운 마음을 가진 채 전화를 끊었다. 그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 밖을 나갔다 다시 집을 못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도 언제까지 안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민혁과 함께 밖을 나갈 때는 자동차를 탈 때까지 어떻게 가는지 거의 기억이 없다. 약의 부작용인지는 몰라도 차에서 잠을 깨거나 거의 비몽사몽해 기억이 안나는 상태로 민혁에게 안겨서 갔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는 것만큼이나 민혁이 신경 쓰는 건 바로 하루에 세 번의 복약이었다. 아직 민희의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민혁이 직접 처방해서 가져다주는 약이었다. 민희는 한 번도 약을 거른 적이 없지만 효과는 없었다. 민희가 약에 대해 물어봤지만 그는 시력이 회복되도록 도움이 되는 약이라고만 했다. 민희는 민혁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