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1)
어느새 가을이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지나온 계절을 만끽하지 못하고 지나왔다. 맘 편히 산책을 간 지가 언제던가. 사실 산을 가고 싶었다. 서울 산은 돌산이라 등산화가 필요한데 장비가 없기에 무난하게 산책을 간다. 걷는 게 참 좋다.
서오릉은 고양시에 있다. 서울에서 고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숲길로 향하는 계단이 하나 있다. 그 곳에서 저렇게 고양씨가 햇살을 즐기는지 멀뚱멀뚱 사람을 보고만 있었다. 설마 나랑 교감하는 건가 하며 눈을 깜빡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람이 눈을 깜빡일 때 고양이가 같이 깜빡거리면 인사라고 해서 기대해봤는데 역시나였다.
사실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낼 생각으로 갔는데 내 나이가 아직 청소년 나이였다. '국립'자가 들어가면 청소년은 무료인 곳이 많은데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지런히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국 쏟아지는 할 일에 다짐은 며칠가지 못했지만
들어가자마자 명릉을 볼 수 있다. 숙종과 인현왕후가 묻힌 릉이라고 한다. 항상 유적지나 문화유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엔 공부 좀 하고 올 걸 그랬나 싶다 .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번에는 미루지 않고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 32화-33화를 봤다. 서오릉에 대해서 설명을 설민석 선생님이 잘 해주신다. 오른쪽 좁고 낮은 길이 임금이 지나는 어로이고 왼쪽 넓은 길이 향이 지나가는 향로라고 한다. 임금의 길을 느껴보기 위해 어로로 걸음을 옮겼다.
왼쪽이 숙종의 릉 오른쪽이 인현왕후의 릉이다. 장희빈 서사로 숙종과 인현왕후는 많이 들어봤다. 인현왕후 역할을 박하선 배우가 했는데 아직도 그게 찰떡이라는 생각을 한다.
<선을 넘는 녀석들>을 보니까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관계는 그저 서인과 남인의 갈등이 투영된 게 아닌가싶다. 남인과 서인 중 권력을 누가 잡냐에 따라 숙종은 장희빈(남인)을 택하기도 하고 인현왕후(서인)를 택하기도 하는 걸 보니 중전자리도 숙종의 왕권강화책의 일부였던 것 같다.
왕릉을 모시기 위해 왕릉 관리인들이 상주하던 재실 앞이다. 낙엽이 나무를 물들이다 못해 바닥까지 주황 빨갛게 물들였다. 한참을 서서 가을을 바라보았다.
가을은 햇빛도 어쩜 이리 가을스러운지. 서오릉에 오길 잘했다.
처음 봤던 명릉보다는 조촐한 묘다. 사도세자를 낳은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원이다. 사도세자하면 뭔가 가엽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아들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엄마 영빈 이씨의 마음은 어땠을지 상상도 안 간다. 여기엔 또 어떤 얘기가 담겼는지 찾아봐야겠다.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능이다. 어린 나이에 천연두로 죽었다고 한다. 단릉으로 되어 있어 아까 본 명릉, 그러니까 쌍릉보다 조금은 외로운 느낌이다. 그리고 참 숙종은 끊임없이 사랑을 했구나 싶다. 진짜 사랑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