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테니스를 친다.
배운지 어느덧 5년차에 접어들었다. 동서와 저녁을 먹던 어느날 지나가는 말로 새로운 운동을 같이 배워보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동서와 나는 그간 운동을 아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친구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급발진 추진력을 갖은 동서는 다음날 바로 집근처 테니스장에서 레슨을 끊었고 내 레슨비까지 내버렸다. 내 테니스 라이프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운동이었다. 공높이, 좌우, 스핀에 따라 스윙방법이 다 달랐다. 프로와 아마추어간의 간극이 가장 큰 스포츠라 할만하다. 근데 그보다 나를 자극했던건, 꼰대 아저씨들의 태도였다. 평균연령 예순즈음에 평균구력 20년들이던 동네 테니스장에서 레슨 후 게임을 하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쫓아내기까지했다. 아무도 없는 한여름 정오시간이나 한겨울 새벽시간을 이용해 동서와 둘이 단식을 칠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분노에 찬 테니스는 내 삶에 스윽 스며들었다.
부단한 노력끝에 1년반이 지나니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게임을 해주기 시작했지만, 걸음걸이도 이상한 노인들에게 여전히 코트위에서 농락을 당하고 있었다. 머리속은 테니스를 잘치기 위한 승부욕으로 지배되었다. 술자리도 줄이고, 늦잠으로 채우던 주말 아침을 새벽 테니스로 대신하게 되었다. 유휴시간을 테니스로 채우니, 사람이 아주 부지런해지고 건전해 보였다. 퇴근후 테니스를 치고 집에 오면 아드레날린이 계속 뿜어져 나와 활기찬 에너지로 와이프를 대하고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동과 육아는 대칭점에 있었다. 처음에는 운동을 좀 포기하고 육아에 올인했다. 하지만 칼퇴 후 집에 와서 한숨도 쉬지 않고 육아를 하는 삶을 반복하니, 산소가 부족한 듯한 갑갑함이 느껴졌다. 용기내어 주말의 아침 7시부터 1시간 반의 운동을 요청했고 받아들여 졌다. 물론, 내가 운동한 시간만큼 와이프도 좀 더 쉴 수 있도록 육아총량제 거래를 한 것이다. 근데 운동이란게 하다보면 일찍 게임이 끝나는 날도 있지만, 박빙의 승부로 경기가 길어져서 늦게 끝나는 날도 생기게 되었다. 10분정도 늦어져서 엄청나게 혼났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본인 낮잠을 1시간 40분 잤다고 내가 혼낸적은 없던걸 생각해보면 내 거래가 불리한 조건인건 확실한 것 같다. 한번은 아내가 운동끝나고 호떡을 사오라고 했다. 운동도 예상보다 길어져 1시간40분을 했는데, 헐레벌떡 호떡사러 가는 나를 본 장인어른이, 뭐 그렇게 눈치보면서 사냐며 본인께서 해미에게 말해 놓을 테니 그냥 천천히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뇌가 멈쳤는지 동서와 담소를 나누며 정말 천천히 다녀왔다. 집 나간지 2시간 반만에 돌아왔다. 아내는 화가나서 울고 있었고, 애기도 울고 있었고, 난 호떡 봉지를 들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전화가 오긴 했는데, 바빠서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단다. 아내는 나를 다 혼낸 후 장인어른에게 전화해 혼냈다. 물고기가 쥐에게, 고양이한테는 잘 말해놓을 테니 안심하라고 말한걸 믿어버린 느낌이랄까. 생선과 쥐, 둘다 그저 고양이의 밥이었다.
도망자와 추격자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주말 1시간반이 점차 1시간 40분이되고, 50분이 되다가 2시간이 되었다. 대부분 아내가 이해해주려고 노력하지만, 한번씩 확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경기가 길어지는 꿀잼의 시합일수록, 마음 한켠은 더욱 쪼려오게 된다. 다만, 도망자가 본인의 신분을 거부하면서 ‘내가 이리 쪼리면서 운동해야해!?’ 라고 한다던가, 추격자가 대놓고 추격자 신분을 밝히면서 ‘대체 몇시야?’ 라고 하게 되면서 커밍아웃하게 되면 둘 다 전투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사실 이 관계는 도망자도, 추격자도 모두 힘들다. 그래서 테니스 포기를 통한 신분계층 재정립을 할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답안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운동을 그만두면서, 아내에게도 드라마/방송 보지 말고, 하루에 털 수 있는 수다의 양을 제한하여 추격을 시작한다면 그게 과연 건강한 가정의 모습일까.
사실 시간이 답이다. 애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육아의 난이도는 낮아졌고, 독박 육아에 대한 부담도 줄어 들었다. 주말에 인정되는 개인의 시간은 좀 더 길어지고 있고, 약속이 있어 반나절을 혼자 봐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게 됐다. 아직 평일 저녁시간까지 자유시간을 갖는건 상상이 안되지만, 그것도 시간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다만, 만약 둘째를 갖는다면 다시 도망자와 추격자간의 잡기 놀이는 더욱 심해질 것이 우려된다. 결국 운동과 육아는, 자유롭고 싶은 현재의 감정과 현재를 희생하면서 미래를 도모하라는 이성이 충돌되는 지점이다. 오늘도 난 현재와 미래의 갈등속에서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