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 5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이다. 고대 실크로드의 중심지였고, 중세 티무르제국의 수도였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우즈베크 최고의 관광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출장으로 한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일하느라 호텔에만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아내는 3년 간 우즈베크에서 일만 하고 살았다. 그런 아내가 마지막으로 사마르칸트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사마르칸트행 기차에 올랐다. 레기스탄 광장의 야경을 바라보며 아내와 나란히 앉았다. 건축물에 빛이 스며든 모습이 마치 알라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아내는 무척 행복해했다. 그런 아내를 보니 3년 간의 그녀의 삶이 들여다보였다.
그녀는 해외에 나와 일하면 삶이 조금 달라질 줄 알았다. 한국 본부에서의 일 보다 현장에서 직접 일하면 더 가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환경은 녹녹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 많다 보니 적응하는데 힘들었고, 꼼꼼히 잘하려 하다 보니 일에 매몰되어 갔다. 하루하루 눈앞에 닥친일을 해결하며 살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 우즈베크인지 모르게 3년이 흘렀다. 게다가 그녀는 하루아침에 '바깥양반'이 되어, 가족을 책임졌다. 본인이 선택한 해외생활이었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웠다. 업무 이외에 집세나 보험 등 시시콜콜한 집안행정까지 모두 본인이 알아서 하다 보니, 책임감이 압박감으로 변했다.
그렇지만 본인의 선택에 온 가족이 함께 했으니, 불평도 하소연도 하기 힘들었다. 코로나까지 겹쳐 온 가족이 타지에서 고생을 하기에 이르니, 미안하고 속상했다. 그래도 그녀의 긍정 에너지로 최대한 담담하게 버티려 노력했다.
그녀와 나는 매일 저녁 '임세운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저녁 식사를 하며 우리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했다. 맥주 한잔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그 작은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우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린 3년을 마주 보며 보냈다.
우즈베크의 시간이 마무리되는 지금, 우린 사마르칸트의 같은 야경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그리고 함께 우즈베키스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한국을 가면 또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도 우린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가다가, 서로를 마주 볼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낸 우리의 방식이니까. 난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현영아. 너 덕분에 우리 가족이 좋은 곳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고마워.'
오늘은 윤슬이의 1학년(YEAR 1) 학기의 마지막 날이다. 3년 간 우즈베크 유학생활을 공식적으로 끝마치는 날이기도 하다. 학기 마지막날에는 학부모를 초대해 공식적인 파티를 한다. 학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공유하고, 아이들이 준비한 장기자랑도 하며, 지난 1년을 자축한다. 1학년의 공연이 시작되고, 윤슬이와 아이들이 무대로 뛰쳐나오는데,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로 <댄스 몽키>였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음악은 윤슬이와 나의 주제곡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윤슬이와 함께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4살(40개월)에 우즈베크에 온 윤슬이는 3일 만에 영어유치원에 들어갔다.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 유치원 생활이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우린 달리는 차 안에서 최신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들었다. 낯선 곳의 불편을 넘기는 우리만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등하원 콘서트'는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BTS의 <다이너마이트>, 블랙핑크의 <아이스크림>, 톤스 앤 아이의 <댄스 몽키> 등 주옥같은 음악들이 함께했다. 그중에 <댄스 몽키>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
학교의 마지막 날, 무대에서 윤슬이가 <댄스 몽키>에 맞춰 춤을 추니, 너와 나의 3년 간의 블루스가 떠올랐다. 우즈베크행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리고, '생각의 벽'에 서 있던 미운 4살 때의 퉁퉁 부은 얼굴. 아빠에게 혼난 후에도 항상 먼저 아빠를 안아주러 오던 선한 눈동자, 아빠가 해 준 어설픈 밥이 맛있다며 잘 먹던 야무진 입술, 친구들과의 갈등도 스스로 잘 헤쳐나가던 강한 마음 등 3년 간 내가 바라본 아이의 시간이 아스라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너와 손잡고 다니던 우즈베크의 공간들이 눈앞에 띄워졌다. 너와 함께 한 공원, 놀이터, 학교 정문 그리고 늘 우리를 따라다니던 타슈켄트의 맑은 하늘과 너의 밝은 모습... 난 결국 울컥하고 말았다. 너와 나의 시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그리고 아름다운 우즈베키스탄.
마침 윤슬이는 공연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손을 흔들며 방긋 웃는다. 난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높이 들어 손을 흔들었다.
'윤슬아. 너 덕분에 아빠가 정말 행복했어. 우즈베크에서의 시간 절대 잊지 않을게.'
그렇게 우린 헤어짐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