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변에서 벌써 3년이 지났냐며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췄고,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들 역시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지내다 보니, 결국 우리의 해외생활은 그들 입장에선 빠르게 지나갔으리라. 한국의 시간이 멈춘 사이, 마치 우리 가족만 미지의 공간에서 3년을 보내고 온 느낌이랄까? 우리의 시간이 꿈만 갖게 느껴진 이유였다.
긴 꿈을 꾸고 집으로 돌아왔다. 3년 전 살던 그 집이다. 그런데 집이 달라 보였다. 특히 주방은 더 그러했다. 그전에는 아무도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던 공간이다. 그러나 이젠 어떻게 움직여야 수월하게 요리가 가능한지, 주방용품을 어떻게 배치해야 편할지 등 동선이 그려진다. 그리고 당장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찬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몸이 움직이고 머리가 돌아가는 게 신기했다. 마치 나의 뇌에 주부생활이라는 프로그램 칩을 하나 넣은 듯이 능력치가 업그레이된 기분이었다. 같은 집이었지만, 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짐을 정리하면서 우연히 시가 적힌 액자를 발견했다. 서예작가인 후배가 내가 좋아하는 시를 정성스럽게 써 준 액자였다.
김후란
높게 더욱 높게
낮게 더욱 낮게
남길 것은 남기고
구기지 않게
잊을 것은 잊고
시들지 않게
버릴 것은 버리고
쌓이지 않게
나를 세우고
너를 세우고
세상을 바르게
뜨겁게 아프게
이 시의 '나를 세우고 너를 세우고'라는 구절에서 내 이름 '세운'이 탄생했다. 하루를 살아도 열정적이고 후회 없이 그리고 바르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이 내 이름에 담겼다. 지금까지는 이 시가 가진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바르게 열정적으로 살아라 정도의 말씀이라 여겼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자, 이 시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즈베크에서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이 시가 가슴에 박혔다. 힘들 때마다 잘 버릴 줄 알아야 했고, 잘 잊을 줄 알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높여야 했고, 나를 지켜야 했다. 가족을 위해서는 나를 낮출 줄도 알아야 했다. 우리가 결정한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나를 지키면서 가족을 지켜라. 내일의 걱정보단 오늘 하루를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충실하게 살아라. 이것이 내 이름이 가진 메시지였고, 난 40년 만에 난 내 이름대로 살았다.
얼마 후엔 아내가 휴직을 한다. 윤슬이가 1학년에 입학하는 해에 육아휴직을 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아내의 차례다. 1학년의 아이는 또 다를 것이다. 아침저녁 식사 준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학교다 학원이다 아이를 챙겨가며 매니저 생활하는 것도 지칠 것이다. 머리가 커진 아이와 조율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등교시키는 것조차도 힘에 부치는 날도 올 것이다. 아이와 오롯이 보내는 시간이 행복한 만큼 작은 고민과 시련도 함께 올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아빠가 함께 한다. 먼저 해본 일이기에 서로가 공감하고 나누다 보면 보다 수월할 것이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생활 곳곳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이다. 그렇게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함께 나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난 이제 반쪽짜리 아빠가 아니니까. 언제든지 와이셔츠를 풀어헤치고 등장해 살림과 육아를 대체할 수 있는 슈퍼맨이 되었으니까.
아내의 육아휴직도 나처럼 행복하게 지나가길 바라고 응원한다. 그리고 난 항상 옆에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의 슈퍼맨으로...
그렇게 난 비로소 아빠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