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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pr 26. 2023

전지적 아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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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말로는 나는 소아비만이었다고 한다. 모유 대신 달달한 대기업출신 젖소의 원유로 만든 분유를 더 선호해 모태뚱뚱이로 포동포동하게 자랐고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뚱뚱하다고 한다. 매번 건강검진에 비만 판정을 받지만 그렇다고 내가 많이 먹는 건 아니다. 거의 안 움직여서 부은 게 살이 됐다.... 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흠.


억울하지만 나는 내 체형에 비해 훨씬 덜 먹는다. 예전에 밝혔다시피 나는 식탐이 거의 無에 가깝다. 내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나 먹고 싶다는 말은 1년에 고작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나는 미식가가 아닌 식가다. 어쩌다가 입맛에 맞는 게 있어 지나가는 말로 "맛있다." 말하면 우리 부모님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언젠가는 나에게 사 갖다 준다. 특히 아빠가 심하다. 내가 뭘 먹고 싶어 하든 그게 뭐든 그게 얼마든 무조건 구해온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경상도 상남자라 표현을 잘 못한다. 분명 딸을 사랑하고 있지만 입 밖으로 사랑을 내뱉질 못하고 무뚝뚝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그 만의 유일한 표현방식이 나에게 뭔가를 사다 주는 것이다. 이렇게 들으면 우리 아빠가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라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뭐든 박스째 사온 다는 것이다. * 나의 사재기는 아빠 유전자의 영향인가 보다 제발 누가 날 좀 말려줘요 (brunch.co.kr) 참조.



한참 샤인머스킷이 유행하던 시기, 한송이가 만원이 넘는 고오급 과일이라 사 먹을 엄두도 못 냈다. 내 고향 6시에서 샤인머스캣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다. 리포터가 너무 맛있게 먹길래 무심결에 '아 먹어보고 싶다'라 말했다. 옆에 있던 아빠는 즈기 뭐시라고 비싸고 나발이나며 역정을 냈다. 머쓱했다. 


며칠이 지났고 아침부터 외출을 나간 아빠의 손에 묵직한 과일 한 박스가 들려있었다.

샤인머스캣 지옥. 어서 실컷 처 드세여ㅕㅕ.

지인의 지인의 지인에게 물어 물어 물어 어떤 농장에 직접 가서 구해왔다고 한다.

어후. 말을 못 하겠다.

한동안 얼라먹고 갈아먹고 얼라먹고 갈아먹고 얼라먹고 갈아먹고.

다시는 샤인머스캣의 '샤' 자도 안꺼내리라 다짐했다.



글 쓰다가 가끔 당이 떨어져서 달달한 게 당길 때가 있다. 엄마가 마침 계모임에서 받아온 게 있다고 과자꾸러미 같은 걸 줬다. 그 안에 애기 주먹만 한 젤리가 있었는데 몇 년 만에 먹어서 그런지 너무 맛있게 먹었다. 혀로 플라스틱통에 붙은 것까지 날름날름 핥아먹었다. 그걸 아빠가 빤히 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빠가 어딘가에 급히 전화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뒤,

응. 예감적중.

옛다. 한 박스 다 실컷 드세여ㅕㅕㅕ.

말을 못 하겠다.

내 인생에서 이제 젤리는 아웃.


요즘 과자에 빠졌다. 과자 사러 동네 마트에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고 아빠가 이왕 사 먹는 거 한꺼번에 많이 사 와서 두고두고 먹으라고 했다. 사람심리가 또 왠지 그렇게 왕창 사두면 먹기 싫을 것 같아서 귀찮아도 조금씩 여러 번 사 먹겠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아빠의 뭔가를 결심한듯한 불안한 눈빛이 찰나에 보였지만 설마 했다.


2시쯤 아빠가 산책하고 오겠다고 나갔다. 

빈손으로 산에 올라갔다가 양손 가득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딸 과자 많이 드세여ㅕㅕㅕ

산에 과자 나무가 있나 보다.

어후


이게 끝인 줄 알았지?

감자칩도 있다네.


이게 끝인 줄 알았지?

과자는 박스로 사 먹어야 제맛.

우리딸. 날레 날레 드시라우. 피곤할땐 당이 최고지.

말을 못 하겠다.


몇개월치 과자를 사왔다.

공복 혈당이 많이 올랐다.



핫한 편의점 빵이 있다고 해서 친구와 편의점 몇 군데를 돌아 겨우 한 개를 구했다. 연세우유에서 만든 빵인데 안에 생크림이 가득하고 부드럽고 그냥 엄청 맛있다. 품절 사태까지 올정도로 인기가 많아서 눈에 보일 때 꼭 사야 한다. 저녁식사 때 그 빵에 대해서 지나가듯 이야기를 했고 그냥 그렇게 넘어간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아빠는 저녁밥 먹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심스럽게 나가 편의점 몇 군데 돌아다녀서,

어서 드세여ㅕㅕㅕ 우리 딸.

어느 편의 점이라 말 안 해서 온갖 편의점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어후. 대단하셔.

입이 짧아서 반의 반도 못 먹고 금세 질려버렸다.


하지만,

어이쿠 신상이 나왔네.

그럼 우리 딸 먹어야지.


며칠 후,

우리 딸이 뭘 좋아했더라.

기억 안 나면 이맛 저맛 다 사줘야지.

말을 못 하겠다.


이제 연세우유 생크림빵 불매 들어갑니다.



이제는 난 왠만해선 음식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마트 집착러 인 아빠가 취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조금은 미안하다. 이번 어버이날 때 효도차원에서 아빠한테 넌지시 초콜릿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말해야겠다. 신이 나서 동네 아이스크림집을 털어오겠지?


아빠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겠다.

올해 어버이날선물은 이걸로 해결 헤헷.


아빠가 생각하는 나.

한 끼 줍쇼. 불쌍불쌍.


실제 나의 모습.

푸드파이터. 토실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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