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탄 Nov 25. 2022

삐뚤어져도 괜찮아

오토바이 타고 학교 가는 길

1학년을 마친 만두의 인생 첫 번째 여름방학 일정은 3년 만의 한국행이었다. 베트남은 겨울 방학이 없는 대신 무더운 여름을 피해 길고 긴 여름 방학이 있다. 베트남 공립학교는 보통 3개월 정도의 여름 방학이 있지만, 사립학교인 만두의 학교에선 올해 두 달이 조금 넘는 방학이 주어졌다. 여름 방학 동안 찐한 한국 여행을 마치고 하노이에 돌아온 바로 다음날, 만두는 곧바로 학교에 가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개학 후 둘째 주가 되었지만 만두는 여전히 피로 해소가 더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지난주에는 학교에서 그렇게 싫어하던 낮잠을 매일 잤다고 했다. 만두는 유독 ‘잠’과 ‘짜증’의 상관관계가 확실한 아이였다. 잠이 부족하면 작은 일에도 톡 하고 쉽게 울음이 터져버리는 일명 ‘설탕 유리 감성’을 가졌고, 잠만 충분히 잔다면 아쉬울 것 하나 없을 정도로 깊은 대화가 잘되는 일곱 살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만두의 피로가 다양한 짜증으로 표출되는 요즘,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두 시간뿐인 시차적응이 이렇게나 오래 걸릴 일인가’ 생각하며 만두의 빠른 피로 해소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학교 가는 길


자기 방에서 혼자 자는 연습을 하는 중인 만두는 오늘 새벽에도 안방으로 건너와 엄마 아빠 침대 구석 어딘가에서 다시 잠이 든 모양이다. 6시 55분, 긴장되는 만두의 기상 시간이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알람 소리에 알아서 벌떡 일어났을 텐데 깨우려는 엄마 손길을 피해 큰 침대 위를 이리저리 구르는 걸 보니 오늘도 기상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간신히 어르고 달래 몸을 일으킨 만두는 나무늘보가 된 마냥 평소보다 두 세배는 느린 동작으로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러 갔다. 엉금엉금 네 발로 화장실에 가는 아이의 엉덩이에 대고 ‘세수도 꼭 해’라고 한마디 내뱉으려다 꿀꺽 삼켰다. 그래, 세수 좀 안 하고 나가면 어떠랴.


‘띵딩띵딩딩-'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알람이 울렸다. 집에서 나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야속하게도 거실 창 밖엔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멈출 줄 모르고, 어김없이 칫솔을 입에 문 만두의 외침이 들려왔다.


“엄마아아, 나 똥 쌀래!”


비가 오는 날이면 길이 더 막히기 때문에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과 부모가 데려다주는 아이들 모두 등교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에서는 비가 오면 모두가 너그러워졌다. 그렇게 모두가 조금씩 늦는 날이니 등교시간이 다되어서 똥을 싸다가 혼자만 늦어질까 하는 걱정은 줄었지만 그래도 비 오는 창 밖을 보며 험란한 등굣길을 떠올리는 어미의 마음은 심란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뱃속을 비운 만두는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가 모자가 두 개 달린 2인용 우비를 함께 입고 각자의 헬멧을 썼다. 나는 커다란 우비로 오토바이 운전대 앞을 덮었다. 두 다리 사이에 놓인 아이의 가방이 비에 젖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 아파트 입구를 나섰다. 잠깐 쏟아진 비에 발목까지 찰랑찰랑 잠겨버린 골목길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로 가는 지름길인 아파트 뒤 골목은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시장 가게들과 온갖 노점상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그 시장길 중간중간에 도로를 포장한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 움푹 파인 곳이 많았다. 맑은 날에도 그 작은 요철 때문에 오토바이가 크게 휘청거리기도 했고, 그걸 피하려다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운전하면서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비가 오고 길이 물에 잠기기라도 하면 그런 구덩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도 없기 때문에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런 날은 다른 오토바이와의 간격이 고작 20~30cm로 가까이 붙어 있기에 뒤에 탄 아이의 다리가 옆 오토바이들과 부딪히지 않게 더 조심해야 했다. 면 마스크는 조금씩 비에 젖어갔고 마스크와 코 사이의 틈으로 긴장한 숨이 빠져나와 안경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가던 오토바이 행렬은 앞 뒤 꽉 막힌 정차지역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만 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말았다. 오늘도 샌들이 다 젖었다. 마구 뒤엉켜진 오토바이들과 골목길을 꽉 채워버린 몇 대의 자동차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온몸의 감각을 깨웠다.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닥의 높낮이를 느끼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등 위에 착 달라붙은 만두의 통통한 배가 느껴졌다.


"으아악!! 물이 다 튀었어!!"


막힘 구간을 막 벗어나 조금 속력을 낼 무렵 만두가 소리쳤다. 비가 그친 후 물이 잔잔히 고여 있을 때는 오토바이가 고장 나든 말든 굳이 저 물 위로 달려가 보자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막상 자기 발에 물이 조금 튀니 난리가 났다. 비 오는 날은 샌들을 신어야 한다고 말해줬지만 엄마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운동화가 젖어버렸다. 고 녀석 쌤통이다!


비 오는 날의 험난한 등교 길 풍경


오토바이로 5분이면 올 거리를 15분이 걸려 학교에 도착했다. 역시 평소보다 늦게 도착한 마지막 셔틀버스에서 아이들이 서둘러 내리고 있었다. 만두의 헬멧을 받고 가방을 건네주며 인사를 나눴다. ‘늦었으니 서둘러 들어가!’ 엄마의 마지막 당부가 빗소리에 묻힌 건지 듣고 싶지 않은 건지 대답 없는 만두는 뛰어들어가는 형아 누나들 뒤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꼰 짜오 박 아!(Con chào bác ạ!, 안녕하세요!)’ 그 와중에 만난 경비 아저씨에게는 공손하게 인사도 했다. 맘 편한 지각생을 발견한 경비 아저씨에게 등이 떠밀려 아이의 걸음이 조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교문 앞 오토바이 위에서 비를 맞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미는 큰 숨을 내쉬었다.





집에 오는 길


평소 데리러 가는 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만두의 학교에 도착했던 날이 있었다. 평소처럼 1, 2학년 학생 중 스쿨버스를 타지 않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강당 문 앞에서 만두를 찾아 손을 흔들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있던 만두가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와서 눈물을 터뜨렸다. 방과 후 보호자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살펴 주시던 선생님들도 놀래서 무슨 일인지 물었는데 만두는 엄마만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로 답했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엄마가 죽어서 안 오는 줄 알고 무서웠잖아……”


평소보다 5분밖에 안 늦었고, 더 늦게 데리러 가는 날도 많았기에 억울했지만 나는 수영 수업 후에 머리가 산발이 된 채로 펑펑 우는 만두를 꼭 안고 달래주었다. 핼쑥한 얼굴을 보니 역시나 낮잠도 거르고 수영까지 해서 피곤했을 법한 날이었다. 베트남에는 한낮의 더위를 견디기 위해 아침을 일찍 맞이하는 대신 학교부터 일터에서까지 모두 낮잠 문화가 있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만두와는 달리 베트남 아이들은 밤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대신 낮잠을 잤다. 만두의 학교에선 전교생 모두 30분 정도의 낮잠시간이 있는데, 낮잠을 잘 못 자는 아이는 만두를 포함 몇 명 없었다. 나는 아이와 손도장을 찍으며 이제부턴 늦지 않게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아침에 빗줄기를 뚫고 학교에 데려다주었던 그날, 종일 부슬부슬 내렸던 작은 비는 오후가 되어도 그치질 않았다. 오후 4시 10분,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의 알림이 울렸다. 나는 서둘러 주차장 오토바이 위에 말려두었던, 채 마르지 않은 우비를 다시 입었다. 아침처럼 비 때문에 골목길이 막히면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테니 오늘은 조금 더 서둘렀다. 다행히 길은 막히지 않았고 정체 구간이 없어 샌들도 젖지 않았다. 시간 내에 결승점에 들어온 선수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강당 문을 열고 만두를 찾았다. 아마 같은 반 부모들 중 1등으로 도착한 것 같았다. 저 멀리 있는 만두를 찾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를 발견한 녀석이 갑자기 미간을 확 찌 뿌렸다. 문 앞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이 집에 가라며 다시 만두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선생님 말씀에 마지못해 구석에서 가방과 신발을 찾아 발을 쿵쿵 구르며 나오던 녀석이 울그락 불그락 달아오른 채로 소리쳤다.


“엄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친구들이랑 못 놀았잖아…… 으아아아앙.”


오늘도 마지막은 울음이었다. 놀란 선생님이 또 아이에게 다가왔고, 나는 엉엉 울고 있는 만두를 안은 채 선생님께 아이의 더 놀고 싶은 마음을 전했다. 평소에도 아이가 더 놀기를 원하면 십분 정도 밖에서 기다려 주었는데 오늘은 그것도 아니란다. 뭔가 여러 가지가 꼬이긴 꼬였나 보다. 만두가 진정될 동안 문 옆에 비켜서서 같은 학년 다른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을 불러 데리고 집에 가는 평범한 모습을 보았다. ‘늦게 왔다고 난리고, 일찍 데리러 왔다고 난리고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엄마 품에 안겨 흥분이 진정된 만두가 엄마의 웃음에 정신을 차렸다. 그때 선생님이 다가와 ‘내일은 엄마 10분 더 늦게 오시라고 하자’고 했고, 나는 ‘20분 더 늦게 오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의 만두가 또박또박 외쳤다.


“아니야 100분!! 엄마 내일은 100분 늦게 와!!”


기분이 다시 좋아진 만두를 데리고 학교 주차장에 나오니 비가 거의 그쳤다. 오토바이 핸들 위에 걸어놨던 내 우비도 살포시 개어 넣고 교문 앞 경비아저씨와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오토바이가 달리기 시작하니 땀에 젖은 아이의 말랑한 배와 내 등이 닿는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만두는 언제 울었냐는 듯 뒤에서 쫑알쫑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올 때 물이 고여있던 길을 피해 평소에 봐 두었던 새로운 길로 가봤더니 그곳은 종아리까지 침수가 되었다. 나처럼 다른 길을 찾아온 사람들, 그리고 차마 저 물속을 지나갈 자신이 없는 조금 오래된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길가에 잠시 멈췄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할아버지가 1층 가게에 들어온 물을 쓰레받기로 연신 퍼내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미운 세 살, 미운 네 살 등의 시기 하나 없이 평온하게 자라온 만두에게 처음으로 큰 변화가 생기는 중인 것 같다. 상황이 닥칠 때마다 나도 매번 놀라는데 인생 첫 일탈 중인 본인의 성장 통은 얼마나 클까도 싶다. 언제나 그랬듯 내가 할 일은 그저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 주는 것뿐이다. 빗속의 험난한 라이딩 뒤에는 비 개인 상쾌한 바람을 맞는 신나는 라이딩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조금 삐뚤어져도 괜찮아!

이전 08화 베트남 아이와 똑같다는 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