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놀이터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보니 예닐곱 살로 보이는 한국 아이 둘이서 놀이터 바닥에 과자를 내던지고 있었다. 한국인이 흔치 않은 우리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한국인 가정의 남매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들고 있던 과자 봉지에서 과자를 한 줌을 집어서 놀이터 바닥 군데군데에 일부러 흘려 놓고는 멀찌감치 떨어졌다. 잠시 후 다른 곳에서 놀고 있던 더 어린 베트남 아이 둘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찾아다니며 주워 먹기 시작했다. 놀라움도 잠시, 오빠가 여동생에게 하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저거 봐! 또 먹는다. 멍청이같이…….”
남매는 기다렸던 아이들이 돌아왔다는 듯이 낄낄낄 웃었다. 그리곤 더 더럽고 구석진 곳에 과자를 떨어뜨려 놓았다. 나는 남매에게 다가가 ‘놀이터 바닥에 과자를 그렇게 버리면 안 되지.’라고 단호하게 말했고, 한국말을 하는 어른의 등장에 놀란 아이들은 주섬주섬 과자를 등 뒤로 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다시 놀이터 한쪽에 앉아계시던 한 베트남 할머니에게 ‘아이들이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먹고 있어요.’라고 일러드렸다.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더니 ‘더럽게 왜 그걸 주워 먹느냐’며 큰소리로 호통을 치고는 홀연히 놀이터를 떠났다. 할머니가 그 아이들의 보호자가 아닌 듯했다. 남겨진 아이들은 다행히도 더 구석진 곳의 과자들은 찾지 못한 채 놀이터를 떠났다.
심란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처음 보는 한국인 무리가 보였다. 야외 바비큐장에서 두세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듯했는데, 그 무리 안에 아까 그 남매가 보였다. 아이의 부모로 추측되는 부부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나는 다시 방향을 바꾸었다. 앞으로 가지도 그렇다고 돌아서지도 못한 채 나는 자리에 멈췄다. 아이의 부모를 만나서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저기요. 이 아이들이 베트남 아기들에게 과자를 주어 먹게 했어요.’ 아니, ‘저기요. 아이들이 베트남 아기들을 무시하는 언행을 했어요.’ 아니, ‘저기요. 저는 당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한 일들을 보고 정말 끔찍했어요.’ 아니, 나는 그 부모를 마주한 채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끝내 나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당신의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으니 잘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물론 아이들은 그 장난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것인지 아직 와닿지 않을 수도 있고, 과자를 주워 먹게 된 다른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스스로 내뱉은 말과 생각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건지에 대해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바비큐 파티장에서 나오는 단란한 웃음소리들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나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 어른들이 하는 언행들을 떠올랐다. 아이들을 나무라기 전, 우리가 먼저 자기 안의 야만성을 돌아볼 차례였다.
이 땅에서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노이
하노이에서 12년 동안 한국 학교를 다니고 한국의 대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의 대부분은 베트남에 대해 잘 모른다. 많은 한국 아이들은 베트남에 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한인 타운 안에서만 살기 때문이다. 학교나 가족 여행으로 떠나는 관광지를 제외하고 베트남을 깊이 있게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언어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알아가야 할, 가까워져야 할 이유를 찾기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만나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관리자로 일하는 아빠 회사의 직원, 집 청소 해주는 도우미 아주머니, 한인 타운의 식당이나 가게에서 만나는 베트남인 직원, 아파트 경비와 청소부 등 아이들이 만나는 베트남인은 대부분 지위가 높지 않은 노동자들이다. 학교에서 인기가 없는 베트남 수업의 베트남인 선생님이나 한-베 가정 친구의 한국말 어수룩한 베트남인 엄마는 다른 선생님들이나 다른 한국 엄마들과 동등하게 존중받지 못하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하노이에서 한국인은 억압받고 차별받는 소수자가 아니다. 한국인은 베트남에 사는 동시에 하루아침에 저절로 신분이 올라가게 되고, 만나게 되는 베트남인 노동자들을 자연스레 하대하게 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단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 만으로 '갑'이 된다.
하노이의 식당이나 가게, 또는 직장에서 한국인이 베트남인 직원에게 한국어로 ‘야’, ‘너’라는 호칭과 함께 반말을 쓰는 걸 보는 일은 정말 흔하다. 개인적으로 유독 불편하게 느껴지는 표현이 ‘얘네’, ‘쟤네’라는 말인데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더라도, 혹은 보편적인 베트남인을 통틀어 말할 때도 많은 한국인들은 이 단어를 자주 쓴다. 일상에서 이런 것들을 자연스레 보고 들으며 자란 이곳의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베트남에서 좀 살았다고 한 이 아이들이, 아니 베트남에서 대부분의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은 과연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놀이터에서 한국인 남매를 만난 그 오래전 그날, 나는 밀고 있던 유모차 안의 내 아이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몇 년씩이나 살면서 베트남에 대해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 동시에 한국에서 고작 몇 년 떨어져 살면서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는 이 불쌍한 아이들과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노이에 사는 한국 아이들이 한국과 베트남에 대해 더 많이 접하고, 바깥세상 돌아가는 다양한 이야기에도 관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인 타운 온실 속에서 내가 가장 잘난 줄로만 알고 편안하게 사는 게 아니라, 위아래 선입견 없이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유연하니까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프로젝트 꿍cùng] '베트남 차(茶)' 워크숍
[프로젝트 꿍cùng] 작가의 집에 초대합니다! 가까워지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
나는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대접받는 곳에 살고 있다. 서양에서처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자주 민감한 관계가 되곤 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 같은 힘듦도 없다. 한국에 우호적인 동남아의 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한국을 좋아하는 나라인 만큼 나는 한국 사람으로 베트남에 사는 것이 너무도 득일 때가 많다. 국적 하나로 억울한 사람들이 허다한 이 세상에서 국적 하나로 이렇게 과분한 대접을 받고 충분히 누리며 살아간다는 건 언젠가는 우리도 이들에게 이유 없이 베푸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베푸는 건 둘째 치고, 일단은 먼저 동등하게 바라만 봐주어도 좋겠다. 그리고 그 관계 맺기의 첫 번째 걸음은 바로 상대를 바르게 알아가는 것이다.
베트남에 살면서 ‘평화’를 말한다는 건 참 어렵다. 전쟁과 같은 거창한 평화를 논하는 일은 겁 많은 나에겐 여전히 거창하고 무거운 일이다. 하지만 하노이에 살면서 내 안과 주변의 작은 평화를 살피는 건 내가 꼭 해야만 할 숙제라고 느껴졌다. 이곳에서 장래희망을 ‘주재원 아내’라고 쓰는 어느 한국 아이들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에서 이렇게 적은 돈으로도 사람 부리며 떵떵거리고 사는 게 제일이다’라고 말하는 그 부모에게 분개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지 않은 훌륭한 부모를 더 많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한발 걸쳐져 있는 이 작은 한국 사회도 언젠가는 뭔가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나는 하노이에서 내 멋진 베트남 친구와 한국 사람들을 잇는여러 꿍꿍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건 이 잔인한 사회에서 나 스스로 버텨내기 위한 일이기도 했고, 여기서 쭉 자라날 내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내 이기적인 평화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발버둥 치고 있다.